마음공부

어려움이 주는 선물

주형진 2018. 2. 2. 22:30




어제는 올 들어 최고의 기온을 찍었다. 한마디로 푹푹 찌는 더위, 그 자체.

그래도 그저께까지는 덥기는 했지만 밤에는 나름 견딜만했고 습도도 비교적 높지 않아서 피부 호흡도 원할한 편이었다. 하지만 어제는 그 모든 것이 바뀌었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다.


우리집에는 에어컨이 없어 어제와 같은 극한 기온을 온 몸으로 맞아 싸워야 한다. 낮에는 계속 샤워를 해대고 선풍기 바람에 몸을 맞기면서 견딜만 하다. 하지만 문제는 밤이다. 밤에는 잠을 자야 하는데 그게 힘들어진다. 침대는 뜨끈뜨끈하고 몸은 불덩이같은데다 피부는 땀에 쩔어 꿉꿉한 상태는 도저히 편한 잠을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잠은 대체적으로 설쳤다고 봐야 했다.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새벽 늦게 들어서면서 온도가 나름 낮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람도 약간 불기 시작하면서 만 이틀간 우리 가족을 괴롭혔던 극한 더위가 뒤를 돌아보면서 아쉬운 듯 살짝 물러나기 시작했다. 물론 갑자기 또 들이닥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급작스런 이번 한증막의 도래는 일본 남동쪽으로 치고 올라온 태풍때문이라고 한다. 그 태풍이 남쪽의 더운 공기를 밀어 한반도쪽으로 올리면서 동시에 동풍이 태백산맥을 넘어서면서 고온다습한 푀엔 현상인가 뭔가하는 촉진제로 양념을 하면서 이번 만행을 저지른 주범이 되었다고 한다. 태풍이 이동하고 고온다습한 공기층도 자리를 떠가면서 약간은 살만한 온도를 남겨놓은 것이다.

이틀간 얼마나 공기가 뜨겁고 숨이 막힐 정도였던지 어제보다 불과 2도 내지 3도 정도밖에 내려가지 않은 기온에도 시원한 느낌마저 들면서, 아 정말 살만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이 더위도 결코 예년보다 낮은 기온이 아니지만 어제의 괴로운 경험에 반추해보면서 더위가 시원한 느낌으로 받아들여진다.


우리는 언제나 힘든 시기, 괴로운 시기를 겪는다. 그것을 겪을 때에는 고통과 괴로움에 당장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 그리고 그 시기가 영원할 것 같은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다. 지속되는 시간의 길고 짧음이 있을지언정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다. 이러한 이치는 세상의 법칙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힘든 시기가 지나가면 그것이 우리에게 남기는 선물이 있다. 그 선물의 크기와 소중함은 힘든 시기가 더 진하면 진할수록 더 크다.


어떻게 보면 아주 사소한 일일수도 있지만, 이번 극한 더위의 경험에서도 그러한 이치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견디기 힘들만큼 높은 기온과 열을 경험했던 내 마음과 몸은 그로 인해 더위에 대한 경험 기대치(최악의 기대치라는 뜻이다)의 수준을 높였다. 그에 따라서, 비록 오늘 기온조차도 매우 높은 편이지만, 어제의 더위에 비하면 정말 행복한 편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만약 어제 기온이 선선했다면 오늘 나는 이 더위를 더욱 힘들게 평가했을 것이고 시원하다는 말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았을 것이다.


만족과 행복은, 비록 완벽히 절대적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많은 부분이 ‘비교’에서 비롯된다. 비교하는 것은 다른 것과 비교하는 것일수도 있고 다른 시점의 상황과 비교하는 것일수도 있다. 내가 현재 갖고 있는 경제력에 대해서 다른 사람의 그것과 비교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과거 내가 더 부유했던 시절과 비교하는 경우도 있다. 나보다 더 낳은 남과 비교할 경우와 마찬가지로 지금보다 더 좋았던 시절과 비교하는 경우에도 행복감의 차이가 난다.


비교하는 행위 자체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우리가 인간인 이상 어느 정도의 비교질은 어쩔 수 없는 본능적인 느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경험해본 어떤 것의 수준에 의해서 현재의 상황에 더 긍정적일수도 더 비관적일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의도적으로 현재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만들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우리가 겪는 모든 경험은 현재와 미래의 스승이 될 수 있다. 경험이 더 힘들수록, 어려울수록 더욱 좋은 스승이 될 수 있다. 그러한 경험은 향후 겪을 수 있는 일들의 심리적 극복 가능치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래서 모든 고난들은 그것을 대하는 태도에 의해서 더없는 선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복잡성의 차이일뿐 한낱 더위가 주는 교훈이던 인생의 다른 차원의 교통이든 마찬가지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순간 순간 힘든 상황에 처할 때에는, 우주와 인생이 나에게 주는 백신이다라는 생각을 가지면 그것에 의해 우리가 받는 두 번째의 화살을 피할 수 있다.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더 낮은 더위는 나에게 내일의 시원한 청량감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어제의 크기만큼의 더위가 또 오더라도 한 번 견디었던 크기이기에 조금은 만만할 것이다. 어제보다 더 높은 기온의 무더위가 닥치면, 또 하나의 높은 차원의 어려움의 경험에 의해 내일 내가 이겨낼 수 있는 병의 수준을 높이는 선물이 왔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내 마음이다. 마음은 내 정신의 태도에 의해 내용과 질이 결정된다. 어려움은 내 마음의 스토리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비료 중 하나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