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링 효과
마트에 가면 할인을 하거나 원플러스원 행사를 하는 품목들이 많다. 마침 구매하려고 마음 먹었던 제품이 행사를 하고 있으면 얼른 집어 들고는 싸게 샀다는 느낌에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과연 어떤 가격을 기준으로 싸게 샀다는 것이며 그 기준 가격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가격할인이나 행사를 속임수라고 의심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가 싸게 샀다는 만족스러운 마음을 느끼게 되는 메카니즘을 들여다 보려는 것이다. 싸게 샀다면 기준이 되는 가격, 즉 정가가 있을 것이고 그 가격 대비 구매한 가격의 차이만큼 만족도가 형성될 것이다. 정가는 당연히 마트가 정한 것일 터이고 우리는 이를 기준으로 할인된 행사 가격을 싼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즉 생산업체나 유통업체가 정가라고 정해 놓은 가격은 소비자의 마음 속에 준거 가격으로 자리잡는다. 물론 가격표나 행사표에 정가를 적어 놓아 한 눈에 비교가 가능했을 경우에만 한한다.
이렇듯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먼저 입수하거나 제시된 정보 및 수치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게 되는 심리적 현상을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라고 한다. 앵커링, 마음에 기준점이 닻을 내린다는 뜻이다. 1974년 아모스 츠버스키와 다니엘 캐너먼이 발표한 “불확실성 하의 판단 : 휴리스틱스와 편향”에서 앵커링 효과에 대한 실험적인 증거들을 처음 언급했다.
츠버스키와 캐너먼은 이 논문에서 인간은 완벽하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거쳐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며 어쩔 수 없이 어떤 방향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양상을 휴리스틱스와 편향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휴리스틱스는 어림짐작과 같은 비합리적 판단 성향을 의미하며 편향은 어떤 쪽으로 기울어짐을 말한다. 사람들은 판단이 요구되는 일을 마주했을 때, 만약 그보다 앞서 누군가가 어떤 정보나 수치를 제시한 경우에는 그것을 준거 삼아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엄밀히 말해 합리적이지 않은 준거에 의한 ‘비합리적인 판단’인 것이다.
앵커링 효과에서는 순서가 중요 요소이다. 먼저 제시된 정보나 수치가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먼저 닻을 내리지 않는 한 정박은 불가능하다. 만약 가격 협상 중이라면 원하는 금액보다 어느 정도 높게 먼저 제시함으로써 그 가격을 기준으로 위아래로 약간의 조정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 전략이다.
앵커링 효과에 의하면 첫 인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처음 느낀 감정이 이후에 오래도록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처음 인상이 안 좋으면 그것을 좋게 돌리는 데에는 엄청난 비용과 노력이 투입되어야 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영업상 첫 대면 시의 예절과 호감이 향후 거래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 있다. 온라인 웹사이트나 쇼핑몰이라면 잠재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메인 랜딩페이지 UI가 매우 중요하다. 실력 있는 디자이너를 찾는 일에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누구를 설득하거나 사업상 정보를 제공할 때, 만약 긍정적인 정보와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정보를 함께 제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 경우에는 가능하면 긍정적인 정보를 먼저 상세하게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면, “1,2,3이 우리의 강력한 장점이자 차별점이다. 단, 3,4,5라는 단점도 있다.”가 “3,4,5의 단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1,2,3이 우리의 강력한 장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 달라”보다 긍정적 정보를 강력하게 어필할 수 있다. 부정적 정보를 앞세울 경우 그 뒤에 아무리 강력하게 장점을 어필해도 이미 첫 구절에서 단점이 머리에 앵커링되기 때문에 단점의 효과를 상쇄하기가 쉽지 않다.
사실 스포츠를 비롯한 각종 기록들도 이후 기록을 깨려고 도전하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앵커로 작용할 수 있다. 마치 뚜껑 닫힌 비이커 속의 개구리처럼 앵커는 사람의 마음 한 구석에 들러 붙어 상당한 사고의 제한을 주기 때문에 변화를 보다 어렵게 만드는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능력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앵커가 사회적으로 제시되어 한계 극복의 준거점으로서 작용하는 등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행동심리학(경제학)에서는 소비자(인간)을 비합리적이고 감정적 결정을 상당히 자주 일삼는 존재로 본다. 이는 기존 경제학에서 사람을 합리적이고 효용 추구적인 존재로 본 것과는 상당히 다른 관점이다. 합리적이지 않으며 다분히 감정적인 소비자의 행동은 인간 본연의 심리적 특성이다. 따라서 그와 관련된 제반 현상과 기제를 파악하려면 심리학과 함께 길을 가야 한다. 결국 경제는 사람의 일이고, 그렇기에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 참고 ]
한국심리학회. (2018). 더 알고 싶은 심리학. 학지사.
댄 애리얼리. (2011). 경제심리학. 청림출판.
Amos Tversky, Daniel Kahneman. (1974). Judgment under Uncertainty: Heuristics and Biases. Science, New Series, Vol. 185, No. 4157. pp. 1124-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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