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심리학 & 뇌과학

브랜드는 휴리스틱이다

주형진 2019. 8. 16. 21:34

 

마트의 식료품 진열대에 두 제품이 놓여 있다. 하나는 비교적 저렴하지만 처음 보는 회사가 제조한 제품이다. 다른 하나는 상대적으로 조금 비싸지만 익히 잘 알고 있는 이름 있는 브랜드의 제품이다. 어떤 제품이 손이 가겠는가?

전자제품을 구입하려고 한다고 가정해 보자. 바로 생각나는 브랜드들이 있는가? 있다면, 과연 왜 그 브랜드들이 마음 속에 떠올랐는가? 결국 그 브랜드 중 한 곳의 제품을 살 것 같은가?



 

 

세상에는 수많은 제조기업들과 상품들이 존재한다. 이 순간에도 신제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기업들과 상품들은 서로가 소비자들에게 선택 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한다. 과거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상품들이 매장에 진열되는 것들에 한정되었지만 이제는 온라인을 통해서 물리적 조건의 한계가 없이 거의 무한대의 선택지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가히 선택의 홍수로 인한 공포심마저 느껴진다.

다양한 선택 옵션이 존재하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만큼 까다로운 내 욕구를 만족시켜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다. 지나치게 선택지가 많으면 우리의 뇌는 각각의 장단점이나 특징을 비교하는 데 과부하가 걸려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현대인들은 느긋하게 몇 십 개가 넘는 상품들의 장단점을 서로 비교하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 도가 넘치면 짜증만 유발할 뿐이다. 이와 같은 심리적 현상을 ‘선택의 역설’이라고 하며, 스탠퍼드 대학의 마크 래퍼와 콜럼비아 대의 쉬나 아이옌거의 유명한 잼 실험에 의해 증명된 바 있다.

하지만 산업계가 소비자들의 이런 사정에 맞춰서 지극히 한정된 제품만 만들어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현실 속 소비자들은 여전히 많은 선택지 속에 놓여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걱정할 일은 아니다.오늘도 우리는 무수히 많은 상품들의 무더기 속에서도 별 짜증이나 심적 고통 없이 오늘도 꿋꿋하게 쇼핑을 완수해 내고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수많은 상품들의 선택지 속에서 비교적 재빠르게 만족스러운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우리의 놀라운 능력 중 하나는 ‘휴리스틱(heuristics)’에 있다. 휴리스틱은 우리 말로는 딱 들어 맞겠다고 판단되는 용어가 없으나 대략적으로 ‘어림짐작’, ‘주먹구구식 판단’ 등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의미를 풀어 쓰자면, 다양한 경험에 의해 발견하고 체득한 학습을 바탕으로 한 판단 내지는 접근 정도로 보면 된다. 

휴리스틱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제시한 사람은 카너먼과 츠버스키다. 그들의 논문인 ‘프로스펙트 이론’에서 비중 있게 다룬 부분이 바로 이 휴리스틱이다. 인간은 능력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선택 과정에서 모든 옵션들을 완벽하게 분석하고 해석할 수도 없고 그럴 여건도 되지 않으며 생존적으로도 그것이 늘 유리하지만은 않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적, 본능적, 감정적 직감 등에 기초해 휴리스틱을 활용해 선택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만약 휴리스틱을 활용할 수 없다면 수없이 마주치는 선택 상황 하에서 모든 가능성과 선택지들을 완벽하게 점검하고 분석하느라 뇌는 과부하가 걸리고 일상은 진척이 되지 않을 것이다.

휴리스틱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 중에서도 대표성 휴리스틱(representative heuristics)와 이용가능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s)는 일상생활이나 경제활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도 자주 사용된다. 대표성 휴리스틱이란 불확실한 상황 하에서 판단 대상의 전형적인 대표 특성에 대한 선입견을 기준으로 그 대상 전체를 추단하는 성향을 말한다. 이용가능성 휴리스틱은 가용성 휴리스틱이라고도 부르는데, 기억에 떠오르는 특징이나 사건, 상황 등을 이용해서 대상 전체를 추단하는 성향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상품의 구매 결정 과정에서 이 두 가지 휴리스틱을 사용한다. 어떤 상품은 그 상품이 가진 대표적 특징을 중심으로 선호 감정을 발동시키며, 또 어떤 경우에는 알고 있거나 경험해 본 바에 의해 떠오르는 증거를 구매 근거로 삼기도 한다. 즉 이 두 가지고 대표성과 이용가능성 휴리스틱인데, 이 두 가지 휴리스틱에 강력한 근거를 제시하는 요소가 바로 ‘브랜드’이다. 

브랜드는 어떤 기업이 만들거나 유통하는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의 집합을 대표한다. 소비자는 어떤 브랜드에 속한 제품을 대하거나 사용할 때 인상이나 경험을 통일성 있게 범주화해서 구분해 놓는다. 인상이나 경험은 그 브랜드의 정체성으로 마음 속에 체감화되어 저장된다. 만약 인상이나 경험이 긍정적인 것이라면 그 브랜드의 제품이 포함된 선택지를 마주칠 때 브랜드 라벨은 대표성 휴리스틱 요소로, 사용 경험은 이용가능성 휴리스틱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는 그 제품의 통일되고 범주화된 정체성의 집합체가 ‘브랜드’로 심플하고 뚜렷하게 마음 속에 각인화됨으로써 머리 속에서 배타적인 경험 감정으로 쉽게 떠오를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만약 브랜드화가 되어 있지 않다면 눈에 띠기도 힘들뿐 아니라 선택에 들 수 있는 어떤 요소도 제공하기 힘들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결국 브랜딩은 잠재고객 뿐 아니라 대중들로 하여금 우리 브랜드의 정체성과 각 요소들에 대한 인지도를 높임으로써 대표성 휴리스틱의 레이더에 들게끔 만들고, 긍정적인 경험과 감동을 통해서 좋은 인상과 감정을 느끼도록 함으로써 이용가능성 휴리스틱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게끔 만드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유의해야 할 점은, 브랜드가 회피를 위한 휴리스틱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경험과 감정을 만든 브랜드는 선택을 위한 요소들을 강력하게 제공하지만, 반대로 부정적인 느낌의 브랜드들은 오히려 역으로 그 상품이나 서비스를 피하기 쉽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소비자들이 브랜드에 대해 좋은 경험과 인상을 반복적으로 느끼게 만들고 그 감정이 확고하게 굳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 Featured Photo by Adrien on Unsplas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