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마음공부

두 번째 화살 맞지 않기

주형진 2019. 9. 26. 22:14

 

얼마 전 오랜만에 지인을 한 명 만났다. 처음엔 유쾌한 분위기였는데 조금 지나고 나서부터 그 친구가 여러 고충과 괴로움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 그는 사업적으로 아주 활동적이어서 역동적인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데 그 속에서 겪는 어려움들이 대부분이었다. 서운함,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일들,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 상황 등등. 그것들과 관련한 에피소드들도 이야기를 하면서 마치 그 때 일을 다시 겪는 듯 감정적으로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계속 화살을 쏘아대고 있었다.

 

살다 보면 의도하지 않았고 예상치 못했던 일들을 겪는다. 더없이 좋은 일도, 감사한 일도 많지만 반면 좋지 않은 일들도 당하게 마련이다. 그 정도가 심각하든 사소하든 간에 우리는 힘들고 고통스럽고 슬프며 억울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많은 경우 그런 일을 당하는 순간을 지나고 시간이 흘러도 계속 마음이 힘들고 몸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순간이 지나가도 그 경험의 기억과 감정이 우리의 마음에 남겨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힘든 일이 그 순간을 넘어서 자꾸 우리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을 불교에서는 ‘두 번째 화살’이라고 한다.

 

첫 번째 화살은 밖에서 오는 것이다. 우리가 살다 보면 원하지 않거나 힘든 일, 속상하거나 가슴 아픈 일들이 생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즐겁고 행복한 일들만 겪고 사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매사에 조심하고 절제하면 첫 번째 화살에 맞지 않을 수 있는 확률을 높일 수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사람도 인생에서 갑자기 닥치는 모든 화살을 피할 수는 없다. 즉 첫 번째 화살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한계다.

 

문제는 두 번째 화살이다. 두 번째 화살은 밖이 아니라 안에서 오는 것이다. 어떤 일이나 문제를 겪은 후에 우리는 그것에 대해 자꾸 생각을 되풀이하고 감정을 키운다. 그 생각과 감정은 우리 스스로에게 또 한 번의 상처를 낸다. 이렇게 우리 스스로가 자신을 향해 쏘아 대는 것이 두 번째 화살이다. 두 번째 화살은 스스로의 의식과 의지, 훈련을 통해 피할 수 있기에 이 화살에 자꾸 맞으면서 살아가는 삶은 더 안타깝다. 더불어, 첫 번째 화살에 비해 두 번째 화살은 더 깊고 오래 가며 세 번째, 네 번째 등등 화살을 계속 쏘아대는 불행한 일을 촉발하게 된다.

 

두 번째 화살은 첫 번째 화살에 대해 마음이 무지하고 허약하게 반응하면서 일어난다. 생각과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것이 두 번째 화살을 맞는 것이다. 첫 번째 화살은 실체가 있다. 분명 내가 겪은 일이고 사건이며 문제다. 사람인지라 그것에 의해 감정과 느낌이 일어나는 것 또한 당연하다. 하지만 두 번째 화살은 그렇지 않다. 실체가 없다. 지금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미 없어졌는데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고 내 신경 속에만 살아 있다. 그것이 자꾸 되새김질하며 또 마음에, 신경계에 생채기를 자꾸 내는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즉 첫 번째 화살을 맞았을 때 우리의 뇌와 신경계는 다양한 신체적, 감정적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킨다. 이 반응은 근육을 긴장시키고 호흡을 빠르게 하며 혈압을 높인다. 면역력을 잠시 약하게 만들고 소화를 비롯한 정상적인 기능을 잠시 쉬게 함으로써 그 여력을 긴급사태에 투입한다. 따라서 이 반응은 긴급사태를 해결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지만 정신과 신체적 요소들이 하던 정상 기능을 억제하기 때문에 반복되면 좋지 않은 영향을 낳는다.

 

지나간 일을 자꾸 생각하거나 그 느낌과 감정에 매몰되면, 즉 두 번째 화살에 맞으면 마음과 몸이 마치 첫 번째 화살을 맞을 때처럼 반응한다. 즉 생각과 감정 만으로도 뇌와 신경계는 현실처럼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는 사실 불필요하며 실체가 없는 것 때문에 괜히 몸과 마음에 쓸 데 없는 에너지를 소모하고 정상적 기능에 제한을 받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화살을 한 번 맞는 것도 억울한 일인데 그 화살을 빼내지는 못할망정 자신 스스로가 다른 화살들을 스스로에게 찌른다면 얼마나 통곡할 노릇인가.

 

때로는 문제가 아주 심각해질 수 있다. 두 번째 화살이 육체적 부담과 에너지 고갈을 초래하면서 다양한 신경과 내분비 이상을 일으켜 이로 인한 정신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이는 곧 감정적으로 더욱 깊은 소용돌이를 몰고 오면서 매우 심각한 깊이의 정신적 문제와 신체적 문제를 만들 수 있다. 이른바 괴로움의 사이클이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우선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으려면 생각이나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 물론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질적으로 생각이 많고 감정이 풍부하며 과거에 집착하는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있다. 사실 나도 그렇다. 솔직히 예전에는 아주 심했다. 하지만 실체 없는 생각과 감정이 허망함을 깊이 깨닫고 그에 집착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을 반복함으로써 극복이 가능하다. 물론 시간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만 말이다. 즉 이치를 깨닫고 의식적으로 반복적 노력을 되풀이하면서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인간은 발달된 전두엽으로 최고의 지성이라는 선물을 얻었지만 생각의 과잉과 잡념의 쓰레기라는 부산물도 함께 받았다. 두 번째 화살은 비록 변연계와의 합작품이기는 하지만 상당 부분 전두엽의 과잉 생산으로 발사된다. 우리는 무분별한 생각과 감정의 발사와 되새김질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그 첫 번째는 생각과 감정이 실체가 없는 것이며 생각보다 아주 헛된 것이라는 점을 마음 깊이 깨닫는 일이다.

 

 

[ Featured Photo by Alireza Sahebi on Unsplash ]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