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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첫 직장에서 근무할 때 엄격한 상사와 강도 높은 업무 때문에 고생스러웠다. 하지만 퇴사 직전에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료함으로써 많은 동료와 상사들에게 격려와 축하를 받으면서 마무리를 잘 할 수 있었다. 그 덕에 그 직장에서의 경험은 꽤 보람되고 나름 즐거웠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반면 두 번째 회사는 첫 직장보다 출발도 수월했고 재미있는 일도 많았었다. 업무도 적성에 맞고 사내 인간관계도 좋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직속 상사의 돌발 행동으로 억울한 일이 한 번 있었고 마지막에는 대표와의 갈등과 약속에 대한 배신으로 감정적으로 격앙되어 분노를 품고 퇴사를 하고 말았다. 그의 마음 속에는 그 직장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평화롭고 원만했던 경험에 관한 기억은 어느새 사라지고 불쾌한 마지막 경험만 자리잡고 있다.

 

 


 

 

피크 엔드 룰을 아는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이 제창한 개념이다. 경험은 그 경험을 이루는 시간 속에서 가장 절정을 이루었던 순간과 마지막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흔히 경험에 대한 기억은 각각의 순간들에 대한 감정의 평균치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두드러진 몇 가지 경험들, 그 중에서도 가장 절정의 순간과 마지막 순간에 의해 경험 전체의 기억의 질이 결정된다.

 

얼마 전 지인이 창업한 회사에서 그의 요청에 의해 마케팅 책임자로 일한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은 내 머리 속에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일의 시작 순간부터 마지막 순간까지의 모든 순간에 대한 경험을 내 기억을 바탕으로 평가해 본다면 시간적 총량으로 봤을 때 좋았을 때가 나빴을 때보다 결코 적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서는 나쁘게 새겨져 있다. 그 이유는 끝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갈등이 있었고 터무니 없는 이유로 사임을 당했다. 그 때의 불만과 불쾌감은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나쁘지 않은 약 3년 간의 전체 경험이 마지막 얼마 간의 나쁜 경험으로 인해 비교적 좋지 않은 기억으로 바래진 것이다.

 

나는 식당을 가는 곳만 가는 편이다. 현상 유지 편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처음 방문해서 먹었을 때 맛있고 서비스가 좋다고 생각하면 가급적 거기로만 간다. 그렇게 단골이 된 곳을 더 이상 가지 않게 되는 일이 생기는 경우는 주로 세 가지다. 첫 번째 경우는, 어쩔 수 없이 그만 가게 되는 경우다. 두 번째는 더 좋은 선택지를 알게 된 경우다. 마지막은 실망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다. 마지막 경우는 결국 실망스러운 경험이 경험의 끝과 맞물리는 셈이다. 이 경우가 정말 안 좋은 점은, 그 경험을 하기 이전 꽤 좋은, 때로는 너무 좋았던 경험들이 마지막 경험에 의해 불쾌한 빛으로 변색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경험을 한다. 모든 경험들은 그 순간이 지나가면 뇌 속에서 기억으로 저장된다. 사실 그 경험의 실체는 없어지게 되고 기억으로 변환되는 것이다. 인간의 뇌에서 기억 체계는 그리 완벽하지 못하기도 하고 효율적인 기능을 위해 편집되고 버려지며 때로는 하향 작용으로 왜곡되기도 한다. 따라서 하나의 테마 경험(예를 들면, 한 직장에서의 생활이나 어떤 곳에서의 여행, 누군가와의 사랑 등)에서 경험하는 전체가 온전히 기억으로 남아 전체적으로 회상되고 그 감정이나 기분이 평균적으로 해석된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지극히 감정의 꽤 극단이 함께 경험되는 순간이나 시간적으로 가장 현재와 가까우며 경험 전체가 종합적으로 조망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 가장 주요한 기억으로 저장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캐너먼은 이 피크 엔드 룰도 대표성 휴리스틱의 작용 결과 중 하나라고 해석한다.

 

 

고객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피크 엔드 룰은 주로 시작과 끝이 있는 경험을 대상으로 연구된 것이므로 끝이 좋으면 다 좋게 채색될 수도 있다는 희망이 있다. 반면 상품이나 서비스의 경우 안 좋은 경험을 하게 되는 순간은 그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애정과 사용이 끝을 맺는 순간이 될 것이다. 즉 마케팅에서 피크 엔드 룰에서 엔드는 안 좋은 경험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물론 지속적인 경험이나 사용을 하는 것이 아닌, 예를 들면 휴가 가서 펜션에 머물렀던 경험 등과 같이 종료가 명확한 경험은 좀 다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다시 방문했을 때 안 좋은 경험을 했다면 그 역시 그 고객은 더 이상 고객일 수 없을 것이다.

 

피크 엔드 룰을 상품이나 서비스의 개별 경험들에 대입해서 본다면, 상품의 구입 시점이나 서비스의 개별 경험 중 마무리 시점, 즉 계산할 때의 경험에 특히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을 암시한다. 정말 즐거운 식사 시간을 마치고 결제를 하는 시점에서 조금이라도 불쾌한 태도를 경험하게 되면 그 고객의 심리에서는 맛있던 음식마저도 벌레를 씹었던 것마냥 바뀐 경험으로 기억할 수 있다. 반면 혹시 실수가 있고 미숙한 점이 있었더라도 나가는 순간에 진심을 담은 태도와 행동을 보여 준다면, 이를 경험한 고객은 꼭 다시 방문하게 될지는 몰라도 적어도 그 때의 식사시간 전체 경험을 꽤 괜찮은 것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 경험은 긍정적 입소문에도 점화효과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상품, 서비스, 브랜드는 소비자의 경험에 기반해서 축적된 기억의 양과 질의 총합이다. 미래의 고객 충성도를 결정하는 요소는 그 고객이 갖고 있는 기억이다. 피크 엔드 룰에 따르면 그 기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험의 순간은 가장 좋거나 나빴을 때와 마지막 순간이다. 그렇게 본다면 강렬한 긍정적 순간의 경험을 제공함과 동시에 반드시 마지막 경험 순간을 아주 만족스럽게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 Featured Photo by Mr Xerty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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