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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는 그의 저서 ‘기업가정신’에서 불일치에 근원을 둔 ‘혁신’을 언급할 때 ‘컨테이너’를 그 사례로 든다.


195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해상운송에 컨테이너가 이용되지 않았다. 그저 기존 방식대로 수많은 인부들이 수화물을 육지에서 배로, 배에서 육지로 일일이 날랐다. 그러다보니 짐을 옮겨 싣는 데에 너무 많이 지체되었고 선박이 부두에 정박해야 하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었다. 무역의 증가로 해상운송 물동량은 늘어만 가는데 상하역 작업시간을 감내해내느라 선박은 마치 개점을 기다리며 줄을 길게 서는 손님들마냥 부두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기만 했으며 실제 비용과 기회비용은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바다를 건너는 데 드는 돈보다 상하역에 드는 비용이 더 많이 들 정도였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에 단초를 제공한 사람은 미국의 말콤 맥린(Malcom Mclean)이었다. 그는 트럭 회사 운영자였다. 당시 아직 개발이 미비했던 도로사정에 의해 트럭 운송 시간이 지체되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생각해낸 것이 해상운송과의 결합이었다. 그러나 그 방법이 효과를 거두려면 부두의 상하역 효율성의 난제를 먼저 풀어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때 생각해 낸 아이디어가 바로 트럭이 끌고 다니는 뒤의 박스를 아예 분리해서 배에 싣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컨테이너의 시작이다.


물론 컨테이너의 도입이 모든 해상운송에 즉각 도입된 것도 아니었고 이로 인한 해상운송의 효율화 및 비용 절감이 아주 단시간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러한 혁신은 기존의 방식에 익숙한 이들이나 그로 인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강하게 거부되기도 했다. 또한 컨테이너 상하역에 필요한 크레인 설치비용의 부담과 표준화 문제 등을 각 해운사들이 부담하기를 거부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하지만 결국 컨테이너의 도입은 베트남 전쟁을 매개체로 해서 급속히 확대되었다. 이는 항만과 해운산업에 놀라운 효율화를 이끌어냈으며 이로 인해 세계 무역에도 엄청난 기여를 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 컨테이너는 말콤 맥린의 발명품이 아니란 것이다. 그는 트럭 운송회사를 운영하면서 이미 컨테이너 박스를 이용하고 있었다. 다만 그는 비효율과 불합리한 것을 보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경험적 자산을 접목시키는, 이른바 아이디어 컨버전스를 실행했다. 물론 그러한 해결방법을 스스로 도입하고 산업계 전반에 확산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에 옮겼음은 말할나위 없다.


둘째, 해상운송업계가 당면한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시 해운업계는 해상운송의 발전과 효율성 제고를 위해 배의 성능과 운항속도의 개선에 노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운송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놓고 있었다는 말이다. 물론 그 문제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정작 부하가 걸리는 부분은 부두의 상하역 작업의 효율성 문제였다. 아무리 배가 빨리 달려도 정작 부두에 도착해서 몇 일 심지어는 몇 주 동안을 넋 놓고 기다려야만 하는데 실제 그것을 문제삼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움직임은 미미했다는 것이다. 진짜 핵심적인 문제는 이 쪽에 있는데 다른 쪽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혁신은 문제를 발견하는 것 이상으로 그 문제의 제대로 된 성질을 이해하고 다양한 해결방법을 모색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문제는 아주 작은 사소한 것일수도 있고 크고 복잡한 난제일수도 있으나 그 규모는 그리 문제되지 않는다. 문제를 제대로 파악한 후에는 그 방법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실제 접목시키기 위한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장애물이 있더라도 이를 극복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성장한 혁신은 애초에 예상할 수 있는 것보다 무척 거대한 변화를 몰고 오는 주역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이 혁신의 의미이자 진정한 가치이다.




[ cover image via Unsplash @igorovsyannyko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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