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오랜만에 지인을 한 명 만났다. 처음엔 유쾌한 분위기였는데 조금 지나고 나서부터 그 친구가 여러 고충과 괴로움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 그는 사업적으로 아주 활동적이어서 역동적인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데 그 속에서 겪는 어려움들이 대부분이었다. 서운함,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일들,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 상황 등등. 그것들과 관련한 에피소드들도 이야기를 하면서 마치 그 때 일을 다시 겪는 듯 감정적으로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계속 화살을 쏘아대고 있었다. 살다 보면 의도하지 않았고 예상치 못했던 일들을 겪는다. 더없이 좋은 일도, 감사한 일도 많지만 반면 좋지 않은 일들도 당하게 마련이다. 그 정도가 심각하든 사소하든 간에 우리는 힘들고 ..

유난히 생각이 많은 사람이 있다. 나도 그런 편인 듯하다. 기분이 좋지 않거나 찝찝한 일이 있으면 쉽게 떨쳐 내지 못한다. 그 일은 이미 실체 없이 과거 속으로 흘러 내려간 허상에 불과한데도 내 머리가 끄집어 내는 것이다. 인간에게 전두엽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감정과 기억의 생성은 변연계에서 출발하지만 생각의 되새김은 전두엽이 없다면 아마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집착은 그 대상이 기억이든, 생각이든, 탐욕이든, 아니면 심지어는 사람이든 근본적으로 ‘놓지 못함’에서 오는 것이다. 집착은 재빨리 추스르지 못하면 가속하는 특성을 갖고 있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속도가 빨라진다. 운전을 하는 사람이라면 속도를 올릴수록 시야가 좁아지고 위기 대처 능력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점을 잘 안다. 시속..

차를 가끔 운전한다. 구입한 지 12년이 넘은 차의 주행거리가 갓 5만 킬로밖에 안 된다. 초기 3년 정도만 열심히 타고 다녔다. 그 이후로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날들이 더 많았다. 사고는 초기에 두 번 났었다. 한 번은 내가, 다른 한 번은 상대방이 원인을 제공했다. 하지만 두 번 모두 내가 감정을 조금만 제대로 조절했다면 나지 않을 사고였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예전엔 참 험하게 몰고 다녔던 것 같다. 둘 다 접촉사고에 불과하긴 했지만 어쨌든 사고를 당해 보기도 하고, 사고 난 것도 많이 보기도 했고, 인터넷에서 사고 블랙박스 영상들도 접하기도 하면서 언제부턴가 차를 몰기가 무섭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졌다. 거기에다, 직장을 옮기면서 출퇴근에 굳이 차를 갖고 다니지 않아도 되..

재작년 어느 날, 갑자기 집에 너무 쓸 데 없는 물건들이 많다는 생각에 많은 물건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이사 온 지 30년이 다 되어 가는 집. 리모델링은 커녕 도배나 장판조차 새로 한 번 한 적이 없는 집이라 그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짐들이 꽤 많았다. 바깥만 보던 눈을 안으로 돌리니 있어야 할 것들보다 없어도 될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 보였고, 그것들은 짐처럼 느껴져 괜스레 내 어깨를 짓누르는 듯했다. 조만간 이사를 하겠다는 어렴풋한 계획도 버리기 혁명에 한 이유가 되어 주었다. 어떤 뚜렷한 계획 없이 무작정 버리기 시작했다. 정리는 그 다음 일이었다. 버리고, 버리고, 또 버리고. 그리고 더 버릴 것이 없나 찾는 작업이 일주일이 되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그 물건들이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경악했다. 언..

요즘 아주 재미있게 보는 TV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채널A에서 방영하고 있는 ‘굿피플’이다. 로스쿨 재학생들이 방학 동안 로펌에 인턴으로 입사하여 실무 경험을 쌓고 평가를 받는 과정을 예능 형식으로 엮어내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에서 로펌과 인턴들이 업무를 하는 과정들이 나오는데, 이는 각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벌어지는 상황들을 촬영해서 편집한 것이다. 다만 인턴들이 미션을 수행하고 그 결과를 로펌 멘토 변호사들이 평가하며, 패널들이 그 평가 결과를 예측하는 등 예능적인 요소들을 가미했다.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초반에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임현서 인턴과 이시훈 인턴, 이 두 분이 펼치는 선의의 경쟁 구도는 긴장감과 더불어 팬심을 자극한다. 그래서 더욱 몰입과 감정 이입이 되는..
제가 명상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지금 이 순간을 그대로 느끼고 살피는 것입니다. 숨쉬는 순간 들어오고 나가는 공기의 흐름, 살며시 부는 미풍에 느껴지는 살결의 감촉 등에 주의를 집중하며 이를 바탕으로 지금 이 순간에 내 마음이 온전하게 닿아 있도록 노력합니다. 자꾸 벗어나고 도망가려는 생각을 순간순간 알아차리며 지금 이 순간으로 마음을 다시금 살포시 데려다 놓습니다. 명상을 할 때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적인 것들입니다. 스물스물 기어 올라오는 생각, 욕망들. 그것들은 어떤 판단과 감정들을 불러 일으키면서 마음의 고요함과 선정을 방해합니다. 명상 도중에는 우리 뇌의 변연계와 우측 전전두엽이 휴식을 취하는데 그런 방해요소들이 그 소중한 쉼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혹시 명상을 하시나요? 저는 약 2년 전부터 명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워낙 게으르고 의지가 약해 빠졌기에 매일 꾸준히 하지는 못하고요, 가급적 자주 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사실 공황장애를 앓던 10년 전에도 명상을 꽤 열심히 했었습니다. 공황장애를 극복해 내는 데에 명상으로부터 분명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몸과 마음이 많이 회복되면서부터 명상을 게을리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바쁜 일상을 핑계로 전혀 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약 2년 전부터 어떤 계기로 인하여 명상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 ‘계기’란 것은 추후 한 번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명상에도 종류가 꽤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지향하는 바가 저마다 조금씩 다르고 방법에도 약간씩 차이가 납니다. 종..
건강과 다이어트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른바 해독주스라는 게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몸의 독소를 없애는 성분들을 풍부하게 담은 주스를 만드는 것이죠. 건강을 해치는 주 원인 중 하나가 알게 모르게 우리 몸 속으로 들어온 나쁜 성분, 즉 독성 성분이니까 그 성분들을 중화시키거나 몸 밖으로 빼내 주는 영양분이 듬뿍 담긴 해독주스를 먹어 주는 것이죠. 여기에서 그 효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독’은 몸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몸 속에서 육체적 건강을 해치는 독성 물질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마음에 있는 독입니다. 마음의 독은 몸 속의 독성 물질과 마찬가지로 마음 속 여기저기를 돌아 다니면서 정신적, 정서적으로 해를 끼치고 다닙니다. 그 독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
우리는 끊임 없이 생각합니다. 생각을 하는 것은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하면 오히려 잡생각이 더 끓어 오릅니다. 생각을 하는 것은 마치 숨을 쉬는 것과 비슷해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자체를 의식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생각은 의식적 차원뿐 아니라 무의식적 차원에서도 끊임없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과학적 근거는 잘 모르겠지만 쉐드 햄스터드라는 미국의 심리학자는 사람이 하루에 몇 가지 생각을 하는지 연구한 결과 약 4만에서 6만 가지의 생각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단순한 계산으로는 분당 30~40 가지의 생각을 한다는 것이고,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시간을 고려한다면 깨어 있는 동안 하는 생각의 수는 더 많다는 말이 됩니다. 생각이 1초에 한 가지만 나는 것도 아니라는 점..
‘마음’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꽤 오래된 것 같습니다. 잘 다니던 첫 직장을 사직하고 몇 평 되지 않는 작은 사무실에서 밤을 새서 일하기 일쑤였던 20대 후반 시절, 어느 새벽에 급작스럽게 찾아 온 공황발작이 아마 그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공황장애에 의한 발작이었다는 것도 그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심장이나 뇌에 급성 질병이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죠. 갑자기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호흡이 안 되는 거였습니다. 아무리 깊이 들여 마셔도, 가슴이 척추와 붙는다는 느낌이 들고 횡경막이 찢어질 것 같을 정도로 숨을 쉬어 봐도 호흡이 이루어지지 않더군요. 식은 땀이 나고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감에 휩쌓였습니다. 오죽하면 날이 채 밝지 않은 사무실 바깥 도로를 하염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