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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물건 이야기가 아니다. 마음 이야기다. 비우고 정리해야 할 것들은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뿐이 아니다. 기억, 정보, 관심, 감정의 찌꺼기 등 정신적인 것들이 더 많다. 그리고 어쩌면 더 중요하다.


넘치게 소유한다고 생명과 건강에 특별히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곰팡이와 세균이 뒤덮인 오물 투성이로 집이 가득차는 정도만 아니면 말이다. 하지만 정신적인 경우는 다르다. 건강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심지어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직장생활과 사회생활, 심지어는 가정생활에서 우리는 수많은 관계들과 상호작용을 한다. 그 상호작용은 사람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다. 온갖 매체와도 쉴 새 없이 정신적 상호작용을 한다. 특히 정보통신기기들을 통한 소셜네트워크 기반의 사회작용은 사람들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그래도 예전에는 길을 걷거나 휴식을 취할 때 만이라도 잠시 빈 공간의 틈을 만들곤 했는데 이제는 이마저도 사라져가고 있다.


물리적 공간에도 수용에 한계가 있듯, 인간의 마음에도 적정용량이 있다. 마냥 붓기만 하면 마음이 버거워하고 이상이 발생한다. 문제가 생긴 줄도 모르고 미련하게 계속 채우기만 하면 언젠가는 터질 수 밖에 없다. 이는 정신과적, 신경계적 질환으로 발현되게 마련이다. 


물론 우리의 창조주는 미련한 인간들이 이런 바보같은 짓을 하리라 예상을 하고 어느 정도 자동 장치를 마련해 주셨다. 그것이 바로 ‘망각’이다. 대부분의 기억과 감정들은 시간이 흐르면 흐릿해진다. 그리고 어느 정도 더 지나면 대부분 잊혀진다. 물론 잠재의식에 틀어박힌 강하거나 특별한 경험이나 감정들은 잠복기 상태에 있을 뿐이지만 어쨌든 우리가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자정작용을 진행한다.


하지만 이것도 처리능력이 있다. 입력되는 양이나 속도가 많아지고 빨리지면 자동 망각 장치가 더 빠르게 일을 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적체가 된다. 이렇게 적체되는 마음의 조각들을 부지런히 정리하고 자주 청소하며 비워주지 않으면 결국엔 마음이 고장나고 몸에도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더 많은 관계들에 구속되고 더 많은 상호작용에 집착하고 더 많은 정보가 강요되는 현재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것은 바로 비움의 시간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떠나라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될 일도 아니다. 늘 하루 하루 특정한 시간을 일정 부분 비워서 머리와 마음을 비우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이야기다. 물건을 정리하는 것처럼 청소기로 닦고 책을 가지런히 꽂고 쓰레기를 밖에 버리는 것과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음을 비우는 작업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오늘 있었던 일들, 나에게 다가온 경험들, 남들과의 상호작용에서 기쁘거나 힘들었던 기억들, 내가 접했던 정보들 등 수많은 정신적인 입력 데이터들을 조용히 다시 바라보고 그 중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 기억들과 감정들을 버리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즉 하루의 나를 마주보고 내 시간을 조용히 책상 위에 공간적으로 펼쳐보는 그런 시간이다.


30분도 좋고 1시간도 좋다. 아니 어쩌면 10분 만이라도 나쁘지 않다. 마음을 비우는 시간을 하루 중 일부 비우라는 이야기다. 그 시간에는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서류작업도, 심지어는 책도 치워두자. 오롯이 내 마음과 내 기억, 내 정신 속의 감정, 정보, 경험들에만 집중해보자. 아니, 차라리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좋다. 조용히 눈을 감고 나와 세상을 잠깐 단절시켜 보는 소박한 잠시의 짬은 우리를 생각보다 빠르게 정화시켜 준다.


비움을 모르는 세상, 채움의 욕망에 매몰된 세상.

그 세상에 텅 빈 공간을 일부러 내보는 일은, 하면 좋은 것이 아니라 해야만 할 일이다.

건강한 내 삶을 위해서 말이다.





[ cover image via Unsplash @brookecag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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