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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물건을 오래 쓴다는 것

주형진 2018. 3. 16. 23:57




저는 물건을 좀 오래 쓰는 편입니다. 어렸을 적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점점 들면서 가치관이 변화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주위에서도 저보고 물건을 오래 쓴다고 하는 걸 보니 단지 저만의 착각은 아닌가 봅니다.


지금 쓰고 있는 휴대폰은 6년째 사용하고 있습니다. 약정기간은 오래 전에 만료되었고, 단말기 자급제 할인을 받아 매달 상당히 저렴한 요금을 냅니다. 이 모델은 다행히도 배터리가 탈착식이라 개통할 때 받았던 2개의 배터리로 충분히 버티고 있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버티는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어 반드시 여분의 배터리를 지니고 다녀야 합니다. 스크린의 터치 반응 속도도 눈에 띄게 둔감해져 있고 데이터 로딩도 초기에 비해 많이 느려졌습니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제 차는 2006년 모델이니까, 가만 있어보자, 12년째 함께 하고 있군요. 중고로 산 게 아니라 신차로 샀으니까 버티고 있는 거겠죠. 20년 이상 타시는 분들도 봤기에 제가 주름잡을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주위에서는 오래 탄다고 모두들 이야기하네요. 특이한 점은, 주행거리가 6만이 아직 안 넘었습니다. 초기에는 이 차를 타고 출퇴근을 했지만 직장을 옮기고 나서부터는 자발적 뚜벅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차를 모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고 귀찮기도 해졌습니다. 초보일 때에는 전혀 없었던 사고에 대한 두려움도 꽤 커진 것 같고요. 그러다보니 주행거리와 연식이 다소 매칭이 되지 않는 상태의 차가 되어 버렸군요.


이외에도 대학교때 사서 올해까지 입고 다니는 코트, 10년 넘은 허리띠, 역시 10년이 넘은 안경테 등등. 그리고 집에 있는 전자제품도 꽤 오래 쓰는 편입니다. 사실 고백하자면 거실의 LCD TV를 산 지 5년 정도 되었는데 바로 그 전까지 브라운관 TV를 봤었습니다. 약 20년 정도 본 것 같네요. 비슷한 연령대의 냉장고는 트렌드의 영향을 적게 받는 이유로 아직까지 주방에 살아 남아 있습니다.


사실 예전에는 저도 새 것에 대한 욕심이 꽤 큰 편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특히 쉽게 사회적 비교대상이 되거나 내적인 소유욕구를 자극하는 물건들은 빨리 갖고 싶다는 생각을 덜어낼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건 제 자발적인 욕구와 희망이었던 부분도 있지만 주위의 대세적인 흐름에 영향을 받아 휩쓸려 버리는 측면도 꽤 큰 것 같습니다. 단적으로 보면, 스마트폰의 경우 최신형 고급 모델은 100만 원을 오르내리는데 이 가격은 중가형 노트북의 가격과 비슷하고 보급형 LED TV 보다도 훨씬 비싼 가격입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3년 남짓 사용하고 다른 신형으로 바꿉니다. 물론 통신기술의 발달에 부응해야 하고 기기의 성능 둔화 탓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냥 모두들 그렇게 하니까 왠지 나도 휩쓸려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그런 소비패턴은 제조업체의 마케팅 전략에 부응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조금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물건을 오래 쓴다는 것에 어떤 가치를 두는 건 아닙니다. 저의 경우는, 단지 대체를 위한 새 것에 대한 욕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물론 저도 가끔은 새 것에 대한 소위 뽐뿌질이 발동하려고 하는 때가 있긴 합니다만, 너무 쉽게 사그라들어서 싱겁게 끝나 버립니다. 이것도 병인지는 모르겠네요. 희한한 것은, 오래 쓰다 보면 그 물건에 대한 나름의 애착이 생깁니다. 다른 것을 입양하면 왠지 서로 서운한 듯한 느낌이랄까. 그리고 약간의 자부심 같은 것도 가지게 됩니다. 빨리 빨리 변화하고 너무도 쉽게 달라지는 요즘 세상에서 나만의 느림과 지조 같은 것을 물건에 투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행위에 의해 스스로만 느끼는 카타르시스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르죠.


사실 정말 오래 오래 변치 않고 곁에 두어야 하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일 겁니다. 물건은 버릴 수 있지만 사람은 버리지 않아야 하죠, 정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광속의 시대에 우리의 마음은 팔랑팔랑하지 않고 꾸준하고 오랫동안 한결 같은 모습으로 많은 것들을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여유와 넓이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cover image via Unsplash @mimitheku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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