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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꽤 오래된 것 같습니다. 잘 다니던 첫 직장을 사직하고 몇 평 되지 않는 작은 사무실에서 밤을 새서 일하기 일쑤였던 20대 후반 시절, 어느 새벽에 급작스럽게 찾아 온 공황발작이 아마 그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공황장애에 의한 발작이었다는 것도 그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심장이나 뇌에 급성 질병이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죠. 갑자기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호흡이 안 되는 거였습니다. 아무리 깊이 들여 마셔도, 가슴이 척추와 붙는다는 느낌이 들고 횡경막이 찢어질 것 같을 정도로 숨을 쉬어 봐도 호흡이 이루어지지 않더군요. 식은 땀이 나고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감에 휩쌓였습니다.


오죽하면 날이 채 밝지 않은 사무실 바깥 도로를 하염없이 걸었습니다. 일단 바깥 공기에 숨을 맡겨 보려고요. 하지만 소용이 없었고 그 상태는 한 시간 이상 계속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나서도 몸 상태는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내가 왜 이러지, 하는 생각 뿐.


그 날 이후로 몇 년 간을 그 이전 상태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누구한테, 심지어는 부모님께도 제대로 말씀드리지 못하고,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죠. 젊은 나이에 몸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어서였지만, 결정적으로 내가 무슨 병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첫 공황발작 이후로 시도 때도 없이 호흡곤란이 찾아 왔고 심지어는 버스를 타기가 힘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토악질이 나오기도 했고요. 그래서 병원들을 수 없이 찾아 다녔고 검사도 많이 했습니다. 한의원도 찾았었죠. 폐검사, 위장검사, 심장검사, 심지어는 뇌 CT도 찍어 봤지만 말끔했습니다. 오히려 그게 더 답답했습니다. 일 하다가도 갑자기 답답해지고 숨이 힘들어지면 멀지 않은 곳의 새 병원을 찾아 가기도 했습니다.


병원만 찾아 다닌 게 아니었습니다. 내가 느끼는 이상의 원인을 찾아 매일 밤 인터넷의 바다를 헤엄쳐 다녔습니다. 조금이라도 비슷한 증상이 보이면 그 질환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었죠. 하지만 대부분 이미 병원에서 검사를 했었던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너무 우연히도 ‘공황장애’라는 증후군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인터넷에서 말이죠. 그 때까지만 해도 저는 제 몸에 생긴 이상으로만 생각했기에 신경이나 정신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그저 우연히 보게 된 공황장애 관련 기사를 보면서 너무도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겪는 증상과 너무나도 유사한 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는 몇 년 간의 계속된 증상에 지쳐 가면서, 치료는 둘째치고 도대체 이게 무슨 정체의 질환인지 알기만 해도 좋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알게 된 공황장애는 제게 일종의 어떤 빛이었습니다. 정체 모를 어둠의 긴 터널 속에 저 끝에서 극적으로 나타난 흰 점 같은 희망의 빛 말이죠. 저는 그 빛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관련 정보들을 열심히 찾아 다녔습니다. 현재는 공황장애라는 것이 대중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21세기의 여명을 갓 맞이한 당시만 해도 관련 분야 이외의 의사들마저도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제 증상을 듣고 신경과나 정신과를 추천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일단 제 병의 정체의 유력한 후보를 발견하고 그것이 맞는다는 확신이 점점 들기 시작하면서 두려움이 사라져갔습니다. 두려움이 점점 사라지면서 증상이 나타나는 빈도와 정도도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아주 느린 속도지만 말입니다. 제 병은 공황장애라는 자체 이상증후군 만이 아니었습니다. 정체를 모르는 적에 대한 두려움까지 더해진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름 모를 적이다 보니 공황에 두려움까지 더해져 증상이 더 심했던 것이었죠. 그러던 것이 일단 정체를 나름 알아냈다는 생각이 들다 보니 답답하고 막혔던 한 쪽의 숨통이 트인 것이었습니다. 질식의 위험에 처해 있던 사람에게 일단 공기가 들어오면 큰 안도감과 함께 산소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겁니다.


비록 공황장애라는 걸 확신했어도 그건 제 생각일뿐이었습니다. 전문의가 진단을 해 준 것도 아니었고 똑 같은 증상의 환우가 있는 것도 아니었죠. 전술한 바대로 그 병 자체가 아직 널리 알려진 것이 아니어서 어디 가서 이야기하고 공감을 얻을 부분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정신적인 문제라고 정신과나 신경과를 찾는 건 싫었습니다. 사회적인 인식도 두려웠고 저도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저 저만의 방식대로 관련 정보들을 찾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분명히 이 증상은 몸에서 일어나지만 정신적인, 신경적인 부분이 원인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진땀이 흐르며 공포감이 온 몸을 휘감고 온 몸이 내 것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과 함께 질식할 것만 같은 느낌이 있다고 하지만, 공황장애로 인해 죽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나름 분석을 해보면, 그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 어떤 시작점의 불꽃이 발화되면서 퍼져나가는데, 그 출발점에서 느껴지는 것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내가 이러다가 죽을 것 같다는 공포감이었습니다. 그런데 결코 내가 이 증상으로 인해 죽지 않을 것이라면, 그 공포감은 의미가 없고 실체가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내 마음을 컨트롤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두려움은 두려움을 낳기에 그 악순환의 고리를 자르면 증상이 심하게 진행되는 걸 막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요.


그 때부터 공황발작을 치료한다는 것보다는 일단 증세가 나타날 때 마음 컨트롤을 통해서 증세가 악화되는 것을 최소화시키는 데 목표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성적인 결심은 현실에 무력화되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삶의 질이 달린 문제에서 제 의지도 그리 약하지는 않았는지 조금씩 효과를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숨이 막히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 내 의식이 개입하기 시작해서 ‘신경쓰지 마, 괜찮아, 이건 아무 것도 아니야, 그저 환각이고 환상일 뿐이다, 아무 문제 없고 곧 괜찮아질거야, 이로 인해 나한테 어떤 문제도 일어나지 않아, 물론 죽는 일따위는 없어’라고 강하게 저항하는 것이 제 방법이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저항이라기보다는 ‘무시’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두려워서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적을 환상이라고 생각하고 자체에 의미를 소거시키는 것이 나름 제 자가치료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치료는 효과를 나타내서 결국 공황증상은 어느덧 의식하지 못한 시간 속에서 희미하게 사라져 갔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몇 년이라는 시간 동안 전쟁을 치루듯 삶을 살아간 기억의 흔적이 뇌 속에 새겨져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저는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상당히 많이 받고 있었습니다. 나름 첫 사업이라고 시작은 했지만 1년 넘게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차라리 다니던 회사에서 잘린 것이라면 덜했을지도 모르나 제 발로 스스로 걸어 나온 것이다보니 좋은 모습을 보여야겠다는 중압감도 상당했습니다. 더불어 같이 일하던 동료와도 끊임없는 마찰이 있었습니다. 시간은 자꾸 가고 마음은 조급해지니 무척 예민해졌을 겁니다. 좁은 사무실 공간에서 담배까지 피우면서 추운 날 난로 하나에 의지해서 밤을 보내기도 했으니 몸의 상태도 최악이었습니다. 곯아 빠진 문제가 결국 공황장애라는 증상으로 폭발되어 버린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당시, 내가 겪는 이상증상이 마음 쪽에 원인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마음’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힘든 것이 내 병의 원인이었고, 그 병을 나름 치료한 것도 내 마음이었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던 시선을 주위로 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삶의 속도에 브레이크를 밟아 조금 천천히 달리는 여유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건강없는 소유는 의미가 없다는 것도 몸으로 깨달았죠. 공황장애 증상의 느낌은 대략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 역시 시간이 흩뿌리는 먼지에 의해 겹겹이 쌓여져 어렴풋한 추억 비슷한 것이 되는 기분이 들 정도로 공황장애는 제 인생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지난 해 명절에 만난 제 사촌동생에게 이 이야기를 늦게나마 해줬습니다. 가정의학과 의사로 활동중인 그는 증상 설명만 잠깐 듣고는 공황장애라는 걸 단박에 이야기해주더군요. 약간 허무하더라구요. 그 때에는 1년이 넘도록 그 정체를 알기 위해 뛰어다녔었는데 말이죠.


위기는 기회를 낳는다고 하죠. 제 생의 중간에 만난 위기는 저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와 마음에 대한 공부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마음과 몸은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마음의 문제는 몸의 증상으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요즘 우리의 삶은 경쟁과 생존의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마음에 이상을 초래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 이상은 심하면 치명적인 몸의 질병을 야기합니다. 이 경우는 원인이 마음이기에 근본적으로는 마음을 잘 챙기고 다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에 관심을 두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 cover image via Unsplash @seantookthe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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