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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학

후성유전학

주형진 2018. 3. 21. 18:27




제가 생물학과를 다니던 때만 하더라도 ‘후성유전학’이라는 분야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존재했다 하더라도 아주 새로운 분야라서 제가 미처 몰랐었을 수도 있었겠죠. 그만큼 후성유전학은 새로운 분야이며 영역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놀랍고 신선한 개념이기도 합니다.


후성유전학은 말 그대로 후성유전(또는 후생유전이라고 합니다)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후성유전’이란 유전자 발현의 변화가 DNA 염기 순서(서열) 변화 없이 발생이 되고 이 상태가 후손에 유전까지 되기도 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예전에는 유전자의 발현(활성화) 정보는 물론 이 정보가 발현되는 방법과 기능을 제어(조절)하는 정보도 모두 DNA의 염기서열 내에 이미 내장되어 있어서 이 순서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 몸 속에서 유전자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DNA가 유전정보 발현의 임무를 수행해내는 감독이자 선수로서 모든 역할을 한다고 여겨졌습니다. 돌연변이 등과 같이 감독이나 선수 자체를 바꿔 버리는 식의 혁명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유전자의 행동은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DNA 염기서열이 바뀌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유전자의 발현에 변화가 나타나는 놀라운 현상이 속속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즉, 유전자 발현에 모든 정보와 제어권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던 DNA가 바뀌지도 않았는데 발현과 기능이 변하는 현상이 속속 알려지기 시작한 겁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요?


핵심은, DNA가 전지전능하다는 잘못된 믿음에 있었습니다. DNA가 유전자 발현에 관련된 정보를 갖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문제는 각각의 유전정보들이 발현이 되어 정상적으로 기능하도록 스위치를 올리고 내리는 데 영향을 주는 인자들이 DNA 말고도 다른 곳에 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 인자들은 DNA 자체에 결합해서 행동에 영향을 주거나 DNA 염기 나선이 감싸고 있는 히스톤(DNA를 실이라고 하면 히스톤은 실패라고 생각하면 됨)에 부착되어 유전자 발현에 변화를 야기합니다. 물론 이는 아직까지의 연구 결과이며 앞으로 속속 다양한 원인들이 발견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DNA 바깥에서 발현에 영향을 주는 저 인자들이 유전적으로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즉, 미리 정해진 정보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부분 환경적인 조건이나 요구에 의해 영향받거나 대응하면서 발생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후성유전적 현상을 유전자와 환경 사이의 조우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비록 DNA 염기서열은 이미 결정되어져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바뀌지 않지만 환경에 의해 그 발현 여부와 방식이 후천적으로 변경됨으로써 우리 몸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유전적, 분자적 수준에서 증명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제가 후성유전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뇌과학이나 불교철학 등과 마찬가지로 마음과 몸의 상호 영향에 대한 호기심때문이었습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우리 삶의 역동성이 마음과 몸의 차원에서 어떤 원리를 갖고 있을까, 우리가 살면서 마음과 몸이 상호작용하며 후천적으로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등의 질문에 대해 과학적인 탐구 영역을 찾는 과정에서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과거 대학교에서 전공한 분야와 깊은 관련이 있다보니 새록새록 공부욕구가 더 생기는 것 같네요.


앞으로도 후성유전학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내용, 가치있다고 생각되는 콘텐츠가 있으면 포스팅을 하려고 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즐겁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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