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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릴 때 직감과 추론이라는 두 가지 수단을 동원합니다. 직감은 감각과 감정, 무의식이 주로 관여하는 반면 추론에는 논리와 이성, 의식이 작용합니다. ‘왠지 이럴 것 같은 직감이 든다’고 할 때 그 이유를 논리에 근거해 설명한다는 건 대부분의 경우 불가능합니다. 직감이란 말 그대로 정말 그냥 ‘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합리성과 논리적 근거를 선호하고 중요시하는 현대 사회에서 직감에 의해 판단을 했다고 하면 상대적으로 합리적 추론에 의한 판단보다 상대적으로 박한 평가를 받기 마련입니다.


과연 직감은 무시당해도 좋을만큼 형편없는 것일까요? 이러한 평판이 충분히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직감에 의한 판단은 어떠한 정보에도 근거하지 않고 완벽한 우연에 기댄 도박과 같은 과정이며, 반대로 추론은 어떠한 감정이나 비과학적 요소도 완전하게 배제된 순결의 논리적, 합리적 결정과정이라는 것이 증명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물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판단은 누가 하나요? 물론 판단은 우리 각자의 인간 당사자가 합니다. 그렇다면 판단을 주도하는 것은 당사자의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뇌'입니다. 뇌의 작용에 의해 판단이 이루어지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위 단락에서 제시한 조건들은 '뇌'의 작용을 파악하면 증명이 가능하겠습니다. 과연 직감은 완벽한 우연에 기대어 뇌가 발생시키는 도박적인 결정일까요? 과연 추론에 의해 결론을 내리는 뇌는 정말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며 어떠한 불합리한 편향이 게재되지 않는 것일까요?


사실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직감의 발현에 주로 관여하는 감각, 감정, 무의식은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유전자 정보와 살아 오면서 축적한 경험, 그리고 그 경험에 의해서 경험했던 감정의 정보들의 영향을 받습니다. 뇌 신경망 속에는 이러한 정보들이 새겨져 있는데 그 중 대부분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존재합니다. 그러다가 판단이 필요한 상황에 맞부딪히게 되면 그와 관련된 정보가 감각, 느낌, 기분, 감정들의 형태로 주로 무의식적인 경로를 통해 발현되는 것이 바로 직감입니다. 


예를 들어, 과거 어떠한 상황에서 좋지 않은 경험이나 기분을 느꼈던 적이 있다면 그와 비슷하거나 어떠한 요소가 연관되어 있는 상황에서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으로 비슷한 느낌이나 기분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곧 직감입니다. 거의 유사한 두 가지 상황에서 어떤 경우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다른 어떤 상황에서는 그 자리를 빨리 떠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그것이 바로 직감입니다. 그런 직감에는 설명할 수도 없고 의식적으로 떠올릴 근거도 없지만 과거 어떠한 경험이나 감정정보에 의해 신경의 변화가 느낌이나 기분, 몸 상태의 변화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는 이보다 더 복잡한 기제가 관여될 것이지만 기본적은 틀은 동일합니다. 따라서 직감은 근거가 전혀 없는 도박적 요소가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정확히 기억을 해내거나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과거의 어느 때 입력되어 의식과 무의식 속에 숨겨져 있던 경험적 요소의 발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반면, 합리적이고 이성적 논리에 의한 추론을 하는 경우에 우리의 뇌는 어떠한 편향이나 불합리성 없이 완벽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습니다. 인지적편향, 프레이밍편향 등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의 뇌가 완벽하게 중립적이고 순수해서 절대적으로 완벽한 이성적 추론이 가능할 수 있다는 믿음은 희박해집니다. 아무리 무(無)에서 출발하여 과학적 논리적 추론 과정을 거쳐 결론으로 향해 나아간다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은 불완전하기에 기존의 선호나 상황적 인자 등 다양한 요소들에 전혀 영향받지 않고 완벽하게 독립해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매우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존재라고 지나치게 착각하며 살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을 때에도 순간 순간 우리 뇌와 신체는 저장되어 있는 반응 패턴을 무의식적이고 감각적, 감정적으로 뱉어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은 밥보다 빵이 좋겠어, 왠지 운전은 하지 않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저 친구 오늘 사고 좀 칠 것 같군, 등등 수많은 생각과 행동들은 대부분의 경우 감정, 느낌, 무의식적 판단, 그리고 직감이 관여합니다. 다만 우리는 그러한 결정들과 행동들을 하는 기제를 의식하지 않는 것뿐이며 너무 일상적인 것들이라 상대적으로 숙고가 필요한 결정사항에 대한 판단에서 발생되는 직감과는 다른 부류로 착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어떠한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직감은 가급적 배제해야 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서만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는 식의 이분법적이고 편향적 관점을 바탕으로 하는 것은 옳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직감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말도, 추론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직감이 느껴지는 경우에는 그것에 주목할만한 이유와 근거가 존재할 수 있으니 무조건 직감을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할 이유는 없다는 뜻입니다. 어떠한 직감이 느껴졌다면 과연 왜 그런 느낌이나 기분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 보고 숙고해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추론을 통해 합리적, 논리적 결론을 유추하는 과정에서는 사전 편향이나 기타 비과학적인 변수가 정말로 작용하지 않았는가에 관해서도 신중하게 검토하고 살펴볼 필요도 있겠습니다.





[ cover image via Unsplash @heftib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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