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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늘 비슷한 풍경을 경험합니다. 모든 분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죠. 바로 스마트폰입니다.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거의 비슷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과거 한 때의 저도 똑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을 잘 보지 않습니다. 통화를 하거나 업무상 필요할 때에만 사용합니다.


제가 스마트폰을 잘 보지 않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일단 제 스마트폰의 속도가 느리고 성능이 좋지 않아서입니다. 5년이 넘은 기종이다보니 서서히 생명을 다해가는 느낌입니다. 사용하는 게 더 스트레스일 때가 많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눈이 피곤해서입니다. 별로 좋지 않은 광원에 조그마한 화면을 뚫어지게 들여다 보면 조금 지나서 눈이 침침해지고 건조해지는 걸 느낍니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이유입니다. 스마트폰을 보는 것보다 책을 읽는 게 더 좋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눈의 피곤함도 덜할뿐 아니라 백색소음 때문인지 머리 속에도 잘 들어오는 기분입니다.


사실 위의 세 가지 이유는 모두 연관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에 푹 빠져 있었다면 이미 최신형 스마트폰을 구입했었을 겁니다. 또한 눈이 조금 피곤한 것쯤은 큰 문제로 느끼지 않았었겠죠. 그리고 무거운 책은 들고 다니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네, 맞습니다. 의도적으로 스마트폰을 멀리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제가 저러한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 계기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습관적으로 오랜 시간 접촉하는 제 자신에게서 느낀 몇 가지 현상을 확인하고부터입니다.


우선, 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의외로 많은 시간을 너무 자주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접촉을 하고 있더군요. 그것은 명확한 목적이 없는, 그저 습관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그러한 저의 모습이 점점 더 중독과 비슷한 현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더욱 많은 시간을 멍하게 화면을 응시하는 제 모습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행동으로 인해 여러 종류의 아까운 시간을 꽤나 낭비하고 있다는 점도 당황스러웠습니다. 단지 업무를 하거나 공부를 하는 시간이 낭비되는 것만이 아니라 머리를 쉬어야 할 시간마저도 무기력하게 빼앗기고 있더군요. 차라리 그 시간이 휴식이나 재충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우려가 덜할 수 있겠지만 그런 효과는 전혀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콘텐츠는 영상이나 게임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콘텐츠를 즐기는 것은 정보에 대한 능동적인 추구라기 보다는 자극의 수동적인 수용에 가깝습니다. 그러한 자극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인지나 사고 능력을 요구하거나 유발시키지 않습니다. 일방향적이고 수동적인 감각 수용만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할수록 빈도와 시간이 자꾸 늘어만 가고 제어가 힘들어지는 이유는 스마트폰으로 전달되는 콘텐츠의 형태가 수동적이고 일방향적으로 수용되도록 만드는 자극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이 자극을 추구하는 데에는 특별한 사고나 인지 등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특정한 노력이 요구되지 않고, 그에 따라 부담감이나 거부감이 거의 없습니다. 일방향적으로 기분좋은 자극을 그저 접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선조체와 측좌핵에서 도파민이 분출되면서 탐닉의 정도는 더해만 갑니다. 일련의 연구에서 스마트폰에 중독된 사람들의 뇌가 마약 중독자들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결과를 발표했는데, 중독의 기제 측면에서 본다면 이는 그리 놀라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책을 볼 때 우리의 뇌는 글자를 시각적으로 받아들여 이를 해독하며 의미를 추출합니다. 이에는 인지과정과 사고과정이 작용하며 뇌의 후두엽과 전두엽이 골고루 관여하게 됩니다. 자극의 처리와 정보의 처리가 균형을 이루며 작용하여 뇌의 인지력과 사고력을 함께 발달시킵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뇌는 가소적 발달을 균형있게 진행시켜 나갑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영상과 게임 등에 지나치게 오랜시간 노출되면 자극에 반응하는 감각적 기능만 불균형적으로 발달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사고와 인지 능력은 상대적으로 발달이 덜 이루어지게 되거나 심한 경우 퇴화를 겪게 될 수도 있습니다. 더불어, 중독적 자극에 대한 반복적 노출은 그 자극에 대한 민감치를 높이게 되어 가면 갈수록 더욱 오랜 시간의 강한 자극을 요구하게 되기 때문에 중독의 정도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게 됩니다. 때문에 스마트폰에서 손을 떼어내기란 더욱 어려워만 지는 것이지요.


더불어 스마트폰을 통해 영상이나 게임을 즐기는 것은 감각과 감정을 지속적으로 태우기 때문에 뇌의 변연계를 계속 활성화시키는 반면 상대적으로 전전두엽의 제어능력을 약하게 만들어 감정의 조절에 취약한 상태를 고착화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더불어 일련의 연구에 따르면, 배외측전두피질과 전대상피질의 기능이 저하되어 타인의 감정에 대한 인지조절 능력까지 감퇴시키는 것으로도 나타났습니다.


인지능력과 사고능력의 감퇴, 중독 정도의 심화, 감정조절능력의 약화 및 타인의 감정에 대한 인지능력 감퇴 등 위에서 말씀드린 증상들은 뇌의 가소성 측면에서 볼 때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의 뇌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변화를 겪는다는 것이 바로 뇌의 가소성입니다. 뇌의 가소적 변화는 대부분 환경의 변화에 의해 일어나고 강화되는데 위와 같은 부정적 증상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 뇌에서 일어나는 부정적 방향으로의 가소적 변화의 강도와 경향성은 매우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도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나서 오랜 기간동안 푹 빠져 있었습니다. 자기 전까지 스마트폰으로 여러 앱들과 영상물을 즐겼고, 손 안에서 인터넷 서핑의 즐거움을 만끽했었죠.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독서 시간이 상대적으로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책을 멀리하다가 어느 날 새로운 업무와 관련되어 책을 상당량 급하게 읽어야만 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갑자기 상당량의 책을 장시간 정독하려고 하니까 해독능력과 집중력이 예전에 비해 굉장히 딸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겁니다. 정말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스마트폰 중독의 폐해를 설득하기 위해서 과장되게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혹시라도 책을 멀리한 지 꽤 오래된 분들이 있으시면 지금 당장 책을 펼쳐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한 시간, 아니 단 몇 십분 집중해서 독서를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바로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예전의 저로 돌아온 후, 즉 집중해서 독서를 오래도록 하던 원래의 제 모습으로 돌아온 후에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저의 뇌에 책 읽는 인지능력과 사고능력의 배선이 굉장히 약해져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뇌의 가소성은 사소하다 싶은 것들에도 적용됩니다. 뇌가 관여하는 능력들은 우리 스스로가 키우면 발전하고 쓰지 않으면 퇴화된다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명쾌한 진실이 바로 뇌의 가소성입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스마트폰이 무조건 나쁜 것이며 절대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 논리라면 TV나 인터넷 등 기타 모든 미디어들도 역시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대상에 포함될 것이지만 분명 그들에게는 순기능이 있고 우리의 삶에 즐거움과 풍요로움을 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교통사고를 우려해서 자동차를 없애라는 말과 비슷한 어처구니 없는 논리입니다. 절대 그런 이야기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스마트폰의 사용에 스스로 절제를 하고 중독적인 이용으로 빠지는 것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러한 기기의 중독적 사용이 우리의 인지능력과 사고능력에 퇴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그러한 변화가 지속되면 뇌의 가소적 변화에 따라 매우 심각한 지적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염두에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당장 내일부터 지하철에서 스마트폰 보는 시간 중 약 반 정도만이라도 책을 읽는 데에 할애해 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점차 그 비중을 높여 나가면 어렵지 않게 스마트폰 중독의 위험에서 벗어나 보다 유익하고 긍정적인 습관을 획득할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일방향의 자극적인 콘텐츠에 의해 자꾸 약해져만 가는 우리 뇌의 인지기능과 사고기능을 튼튼하게 훈련시키는 효과도 덤으로 얻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요?





[ cover image via Unsplash @liamburnettbl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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