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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학

성격도 노력하면 바뀐다.

주형진 2018. 5. 25. 20:03



어제는 아침부터 상당히 난감하고 신경을 긁는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왠지 무시당했다는 느낌이랄까, 뭐 그런 비슷한 것이 감정을 일으키고 연이어 이런 저런 생각들을 떠오르게 해 마음을 괴롭혔다. 두 번째 화살을 맞을 필요가 없음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어떤 상황에 처하면 생각대로 시원하게 대처가 되지 않는다. 이론과 실제의 간극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 나만의 착각일지는 모르겠지만 – 나를 화나고 착잡하게 만드는 일들에 대한 대처가 상당히 달라졌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다. 즉각 반응하고 후회하며 자꾸 되새김질하는 일 따위는 거의 없어졌다. 마음을 가다듬고 내 자신의 반응과 감정을 바라볼 줄 알게 되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반응하며 적당한 수준의 감정에 적절한 지혜를 첨가해서 보다 이성적이고 후회가 적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사소한 능력을 갖게 되었다. 물론, 아직 완벽한 것은 절대 아니지만 말이다.


문제는 퇴근 후에 집에서 발생했다. 건강이 약간 안 좋으신 어머님께서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집안일을 하시는 바람에 내 걱정이 잔소리와 짜증으로 터져 버렸다. 댐이 무너지는 건 조그마한 구멍이 원인일 수 있다. 화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참아낸다 해도 마음 속에 조그만 구멍을 허락하면 그 양만큼만 새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둑이 터져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린다. 결국 걱정스러운 선의의 마음이 짜증과 화가 되어 지나친 정도의 잔소리와 화로 변해서 뿜어 나왔다. 당신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기에 어머님께서도 큰 반응은 없으셨고, 곧 추스르고 부드럽게 다독여 드리는 아들놈에게서 서운함이 다소나마 풀어지셨지만, 그 후에 내내 마음이 불편했고 ‘내가 왜 그랬을까’하는 생각에 늦은 밤까지 자책감에 후회스러웠다.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면서.


이렇듯 늘 겪는 일상에서 내 성격 중 마음에 정말 들지 않는 부분이 많다. 완벽하게 모든 면에서 좋은 성격을 가진다는 건 한 인간으로서 거의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어떤 부분의 성격이 자타가 공인하는 정도로 안 좋다면 가급적 고쳐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그것이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거나 불안감과 불행한 느낌을 준다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나 자신도 어느 정도는 내 성격 중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파악하고 그것을 고치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과연 노력으로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하는 것이다. 사실 예전에는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과학적으로 그것이 분명 가능한 일임을 알기에 어떠한 의심도 없이 꾸준히 노력하는 중이다.


성격은 외부 환경에 대한 감정과 행동의 표출 패턴이다. 이는 스트레스 반응의 패턴과 비슷한데, 이 역시도 성격을 구성하는 것 중 하나다. 다만 성격은 부정적 요소뿐 아니라 즐거움이나 흥분을 주는 일, 동정이나 연민의 감정을 야기하는 일 등 긍정적인 부분도 포함되어 있다. 환경이 주는 자극이 인지되면 개개인은 그에 따른 반응을 보인다. 그 반응은 저마다 다르다. 완전히 동일한 요인에도 완벽하게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드물다. 예를 들어, 누구에게 무시당하는 말을 들었을 경우, 어떤 사람은 분노에 몸을 떠는 반면 다른 이는 대수롭지 않게 무시하고 넘어가기도 한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사람들 중에서도 자꾸 그 일을 오래 곱씹으며 자신의 대처방식을 후회하거나 자존심 상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이는 그 자리를 떠나는 즉시 그 일에 대해 완전히 잊어버리기도 한다. 이렇듯 어떠한 요인에 대해 반응하는 패턴은 감정, 행동, 생각 등의 측면에서 너무나도 다양하다. 바로 이런 대응 패턴 하나 하나가 모여 성격을 구성하고, 어떤 특정 기준을 중심으로 비슷한 유형들을 추려내 소위 말하는 내성적이라느니 외향적이라느니 하는 것들을 구분하기도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한 사람은 비슷한 자극들에 대해 비슷한 패턴으로 감정과 행동을 뿜어낸다. 예를 들어 화를 일으킬 수 있는 어떤 자극에 민감한 사람들은 비슷한 화를 유발하는 다른 자극들에도 민감할 가능성이 많다. 평소에 별 것도 아닌 일에도 버럭버럭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어느 곳 어떤 일에도 같은 반응을 보일 확률이 높고, 조그마한 실패에도 크게 낙담하고 비관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은 어떠한 장애물에도 용기를 내기 쉽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즉 개인의 환경에 대한 반응은 일정 패턴으로 방향성이 있어서 그런 성향이 성격이 되는 것이다. 물론 예외가 없을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환경의 자극에 반응해서 감정과 행동을 유발하게 만드는 일은 누가 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뇌이다. 모든 정보와 자극은 감각신경을 통해 뇌가 접수하게 된다. 뇌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감각신경은 무용지물이다. 흔히 착각할 수 있는데, 손으로 무엇인가 만지고 눈으로 무언가 볼 때 우리는 마치 손의 피부와 눈의 망막이 그것들을 지각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다. 촉각과 시각의 주체는 뇌에서 해당 감각을 담당하는 뉴런들이다. 만약 뇌에 그 정보와 자극을 전달하는 길이 없어지거나 뇌가 수용을 거부하면 우리는 그 자극을 받아들일 수 없다.


즉, 뇌는 자극을 받아들여서 이를 소화해내고 적절한 패턴의 감정과 행동으로 발현하는 주체이다. 우리 뇌에 존재하는 약 1천억 개의 뉴런들은 어떠한 자극이나 정보에 대해 특정한 구성의 회로 또는 회로 조합체로 배선되어 반응한다. 이 배선 구조는 비록 똑 같은 자극이라도 개개인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실연의 상처에 어떤 이의 뇌는 A라는 경로의 배선이 반응한다면, 다른 이의 뇌는 B라는 경로가 발현된다. 그렇기 때문에 똑같은 일에도 각자가 느끼는 감정이나 취하는 행동이 저마다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비슷한 경로의 회로가 집합적으로 반응하는 두 사람은 비슷한 패턴의 감정과 행동을 표출할 수 있다. 역시 예를 들자면, 좋지 않은 일을 당했을 때 걱정과 불안이 비슷한 수준으로 많은 두 사람은 모두 변연계의 편도체가 유사한 정도로 활성화된다. 즉, 성격은 환경과 환경의 변화로 인해 주어지는 자극에 대해 뇌의 배선이 발화하는 구조적 패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이 어떠한 자극에 대해 발화하는 뇌의 뉴런 회로의 배선 구성이라는 것이 물리적 조절 – 예를 들면 수술과 같은 – 이 아니고서야 바꿀 수 없을텐데, 그렇게 본다면 우리의 성격이라는 것은 결국 변하기 힘든 것 아닌가라고 하는 의문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뇌는 환경과 경험, 우리의 마음에 의해서 변하는 ‘가소적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뇌의 가소성(또는 신경가소성)은 뇌가 비물리적 요인에 의해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변화해서 일정부분 그 형태를 지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뇌 가소성은 두 가지 형태로 일어난다. 첫 번째는 뉴런의 생성과 소멸이고, 두 번째는 뉴런간 연결의 구성과 강도의 변화에 의해서이다. 이러한 변화들은 노화나 정상적인 뇌의 발달에 의해서도 일어난다. 하지만 두 번째 종류의 변화는 환경의 변화와 경험, 교육, 의식적 노력 등에 의해서도 활발하게 일어난다. 


자, 예를 들어 보자. 어떤 형태의 일들에 대해 쉽게 욱해서 화부터 내는 성격의 사람은 비슷한 류의 자극들에 대해 동일한 배선의 회로들이 동시에 활성화된다. 이는 ‘함께 발화하는 신경세포는 함께 배선된다’는 신경가소성 핵심법칙에 따른다. 즉, 그 사람은 살아 온 인생 동안 늘 비슷한 자극들에 대해 그러한 반응을 보여 왔기에 그 회로들이 동시에 활성화되도록 고착화된 것이다. 이미 그러한 반응 패턴은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어서 거의 자동적으로 표출된다. 하지만 만약, 어느 순간 그가 의식적으로 그런 행동 대신 다른 패턴, 예를 들면 화를 내지 않는 것을 선택해서 실행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어떤 일이 일어날까? 무척 힘든 일이었겠지만 그런 변화된 행동을 그가 성취했다면 기존에 활성화되던 회로들 대신 다른 경로의 회로들이 발화된다. 이미 화를 내지 않았기에 그 동안 활성화되었던 변연계 중심의 회로들 대신 다른 지역의 회로들이 발화될 것이다. 문제는, 성격과 관련된 것처럼 오랜 시간 지속되고 반복되어 무의식에까지 고착화된 종류의 뇌 회로의 배선은 한두 번에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여지 없이 기존의 패턴은 답습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가 계속해서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기존의 배선 강도는 점점 약화된다. 반면 노력하는 패턴을 담당하는 배선이 생성, 강화된다. 결국 두 배선의 구성들은 서로 경쟁하게 되고 어느 순간 노력을 지속한 패턴의 배선은 살아남고 기존의 배선은 퇴화된다. 이것을 뇌의 재배선(rewiring)이라고 한다. 재배선의 원칙은, 정신적 경험이나 의식적 훈련을 반복하면 그 경험을 처리하는 신경회로 배선에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서 그 연결이 강화되며, 사용하지 않는 배선은 약화되어 소멸된다는 것이다. 즉, 사용하면 강해지고 사용하지 않으면 제거된다는 단순하고도 명확한 뇌 가소성의 논리다.


성격은 우리가 처하는 모든 사건들에서 주어지는 각각의 자극들에 대한 반응들의 총합이다. 비슷한 유형의 자극들에 대한 저마다 개개인의 반응은 비슷한 패턴을 갖는다고 이야기했다. 만약 우리가 뇌의 가소성을 믿고 각각의 일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반응을 일구어 낼 수 있다면 이는 새로운 패턴의 뇌 회로의 배선을 강화시키게 되고 이러한 배선들이 모여 전체적인 성격의 변화 – 자신뿐 아니라 그 누구도 알아볼 수 있는 – 를 만들어낼 수 있다. 역시 문제는 꽤 강한 의지와 노력이다. 이 두 가지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마음에 들지 않는 성격을 바꾸기는 상당히 힘든 일이다. 그럴 때에는 생각해 보도록 하자. 뇌의 가소성이 없다면 우리는 유지시키고 싶은 어떤 변화를 향한 노력도 헛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뇌는 우리의 충분한 노력만 있다면 우리가 원하는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니 얼마나 희망적인 일인가 말이다. 그것도 어떤 부작용도 없이 말이다.




[ cover image via Unsplash @yannispa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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