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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비교적 오래 한 직장을 다니고 있던 아는 분이 회사를 그만 두고 자기 사업을 준비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는 그 이유를 물어 본 적이 있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대답이 아주 단순명료했더랬다.

“이제 내 일을 해야죠.”

그게 전부였다.

너무나도 간단한 하나의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아주 많은 의미와 사연들이 함축되어 있다는 걸 이내 알게 되었다. 

앞으로 ‘내 일’을 하겠다는 것은, 즉 지금까지는 ‘남의 일’을 해왔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럼 ‘남의 일’이란 무엇일까? 내가 아닌 남이 계획하고 주도하며 결단하는 일, 그리고 그 과실의 가장 큰 부분이 타인에게 돌아가는 일일 것이다.

사실 직장인 대부분은 ‘남의 일’을 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예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거의 모든 직장인들이 그렇다고 보는 것이 결코 과장되거나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내 꿈은 대표님과 우리 회사의 꿈, 그리고 목표와 일치합니다. 그러니 우리 회사의 일은 곧 나의 일입니다!’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을 거다. 그런 정신은 가상할뿐더러 직장 내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기본 자세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당당히 말한 사람인들 모든 것을 자신이 완벽하게 통제하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즐기며 목표를 이루었을 때 그 결실을 마음껏 누리는 일이 가능할까? 아마 대부분의 직장인은 그렇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는 고용인으로서 가장 최대한의 결정권과 자율권을 부여 받고 최고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추측되는 대기업의 계열사 최고책임자들도 그에 대해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분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누군가의 전화를 받으면 벌떡 일어나야 하고, 내년의 연봉을 계산해야 할테니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회사를 다니는 걸 폄하한다고 오해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그럴 의도는 전혀 없으니 오해나 흥분을 할 필요는 없다. 이 글은 그저, ‘내 일’과 ‘남의 일’이라는, 어떻게 보면 중첩되고 관념적인 개념에 대해 그냥 무게감 약하게 생각해 보려는 것일 뿐이니 말이다.

‘남의 일’이면 어떤가!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애초에 모두에게 골고루 분배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고, 능력이 자본으로 전환되고 그것이 다시 능력으로 환원되기에 우리는 그 시스템 속에서 지혜롭게 경제활동을 영위해 가는 것이 일단은 중요하니 말이다. 어떤 것이 더 좋고 나쁘다거나 더 낫고 못하다는 평가는 할 필요도, 그럴 의미 조차도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은 그런 경제적 사회적 체계 속에서 나름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으며, 그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보려는 것 뿐이다.



앞에서 ‘남의 일’을 변변치 않게나마 간단히 정의해 보았는데요, 그럼 ‘내 일’이란 무엇인지 한 번 살펴 보도록 하자. 

‘내 일’이라는 건 제 나름대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그 조건을 정의해 보고 싶다.

첫째,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내가 원하고 갈망하며 성취해 보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는 일이다. 그것을 통해 나의 자아실현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이다. 내가 살아있다는, 내가 세상 어느 곳엔가에 가치가 될 수 있다는 뿌듯함과 성취감을 내 스스로가 오롯이 느끼게 해주는 일이다.

둘째,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이 일을 계획하고 주도하며 실행한 후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데 있어 가장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통제자가 될 수 있는 일이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거나 타인의 의지가 불가항력적으로 개입될 수 있다면 이미 그 일은 내 일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은 유망한 스타트업의 성장기에 투자자나 주주가 개입되면서 흔히 볼 수 있다. 보통 이 때가 많은 창업자들이 정체성과 자존감에 의문을 품고 흔들리기 시작하는 때이다.

셋째, 내가 그 성과를 최대한 받을 수 있는 일이다. 경제적이든, 정신적이든, 사회적이든, 내가 그 일에 대한 성과를 온전히 가져가는 일이다. 물론 그 반대로서, 실패의 책임도 내가 져야 한다는 것 또한 역시 당연한 일이다. 직원들에게 봉급을 주거나 사회를 위해 기부를 하는 등의 일은 차원이 조금 다른 그 다음의 일이 될 것이다.



맨 앞에서 언급한 ‘아는 분’이 ‘이제 내 일을 해야죠’라는 말을 했을 때, 그 ‘내 일’에는 내가 해보고 싶은 일보다는 ‘오롯이 나 자신만을 위한 일’의 비중이 가장 높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누누이 언급했듯이 다른 누군가를 위해 내 능력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이 결코 나쁘거나 가치가 폄하되는 일일 수 없다. 이를 통해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 대가를 얻는 것 자체가 결국 나 자신을 위한 일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남을 위해 일을 하다 보면 자존감이나 자아실현의 영역으로까지 나갈 필요도 없이 사소하게는 궁극적인 만족감에 무언가 구멍이 뚫려 있음을 누구나 느끼지 않나 싶다. 거기에, 일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통제력의 상당부분이 남의 손에 쥐어져 있는 건 엄연한 사실이기에 일말의 불안감을 달고 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생각이나 느낌을 강하게 갖는 분들일수록 ‘내 일’에 대한 갈증, 굶주림을 더 많이 느끼리라 생각한다.

 



말이 너무 길어진 것 같다. 마무리하자면, ‘내 일’은 앞서 말씀드린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일이 되면 더없이 좋을 것일테고, 그에 대한 의지가 있는 분이라면 이를 참고하셔서 신중하고 꼼꼼하게 준비해 나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특히, ‘남의 일’을 할 때에는 비록 내가 행한 행동의 결과라 하더라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책임을 나누어 가질 수 있지만, ‘내 일’을 할 때에는 모든 결과에 대해 ‘나 자신’이 오롯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기에 ‘내 일’을 시작하는 것이 가벼운 정도의 사색의 결과나 감정 처리 과정의 부산물이 아니라 ‘아주 심할 정도의 심사숙고한 결정과 철저한 준비, 그리고 치열한 노력에 대한 각오’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가? 그래도 ‘내 일’이란 걸 꼭 한 번은 해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다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생각은 신중하고 치열하게, 계획은 꼼꼼하고 치밀하게, 결정은 가족과 공유하며 함께, 시작은 단호하고 강렬하게.

모든 분들에게 성공이 함께 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 드린다.

 

[ image via Unsplash @benchaccount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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