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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제 21대 임금인 영조는 83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조선시대 왕들의 평균수명이 약 46세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극히 드물고 놀라운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천민의 평균수명은 40대 초중반, 양반들도 기껏해야 50대 초중반이었다는 것을 보더라도 80을 넘긴다는 건 천수를 누리다 누리다 이제 더는 누리는 것도 지쳐서 그만 두는 지경에 해당한다 해도 과장이 아닐 지경이다.

조선시대까지 갈 것도 없이,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 남성의 평균수명은 55세, 여성은 61세에 불과했다. 불과 60년 전 일이다. 즉 당시 남자가 환갑을 못 넘기고 세상을 떠날 확률이 반대의 가능성보다 높았다는 거다. 심지어 그리 오래 전이라고 생각되지도 않는, 1980년대에도 남자는 63세, 여자 69세로서, 많이 늘어나기는 했어도 여전히 칠순 잔치를 치를 보장은 없는 쪽에 가까웠었다는 것이다. 이 때만해도 외모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40대는 이미 노인의 문 앞에 서성이기 시작하던 때로 인식했었고 50줄에 들어서면 초년 노인으로 대접받았던 때였다. 그래서 60이 지나면, 탈 없이 오래도 사시네요, 기념 해드립니다, 하면서 환갑잔치를 성대하게 열어 드리고는 했었다. 이는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에는 직장을 들어가면 ‘정년퇴직’을 할 때까지 다니는 경우가 많았었다. 정년퇴직은 곧 인생에서 노동 능력의 종말을 의미했으며, 그 동안 오래 고생했고 이제 힘도 부치니 생의 끄트머리를 즐기면서 편안히 쉴 때가 되었음을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장치였다. 60대 초중반으로 평균연령이 상승한 1980년대에 기능직공무원들의 법정 정년이 60세로 상향 조정된 것을 보아도 이런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시대에, 직업은 곧 직장이었고 삶도 곧 직장이었다. 인생의 길이가 늘어나는 데에 맞추어 직장의 재직 평균 기간도 늘어났고 사회는 이러한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여력과 시스템이 합의되어 있던 때였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많은 것이 달라져 있다. 일단, 직장을 정년퇴직할 때까지 다니는 경우가 매우 적어졌다. 공무원은 이례적으로 예외에 속하는 집단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마저도 앞으로는 어떻게 될 지 모른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외환위기를 기준으로 전체적인 산업구조와 고용구조의 체계가 지금의 것으로 변화되는 시발점이 되었다고 보지만, 이런 현상은 비단 대한민국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의 완전 삭제가 완료되어 가고 있고, 더 이상 개인은 ‘직장’에 직업과 삶의 기반을 두기 힘든 경제사회 구조로 급격히 변화되어 왔다.

더 큰 문제는 직장 시스템의 구조적 변화가 고착화 되어 가는 이 시점에서 평균 기대수명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6년 기준 대한민국의 평균 기대수명은 약 82세로서, 불과 40년 전의 평균수명과 비교할 때 15세 이상 늘어났다. 어떤 예측에 따르면 멀지 않은 미래에 기대수명이 100세를 넘길 것이라고 하니, 앞으로의 50대는 40년 전의 30대에 해당할 정도로 생의 지축이 바뀌게 될 것을 예견해 볼 수 있다. 이미 환갑, 심지어는 칠순도 예전과 같은 의미를 두지 않는 정도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수명이 늘어나는 것에 마냥 좋아라 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안정된 직장의 비율은 빠르게 축소되고 있고 그 개념이나 당위성도 경제 체계적으로 옅어지고 있는 판국에 살아 내야 할 날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시대 개인의 인생에서 쌩쌩한 몸과 마음을 갖고 활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나는 반면 그 시간을 온전히 받아 줄 안정된 직장은 반비례해서 적어져 가기만 하는 지금 상황은 개인적으로나 경제적, 사회적으로 매우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법적으로야 정년퇴직 나이를 정해 놓았다고 하지만 실제 대한민국의 대부분 직장, 특히 일반 사기업에서 그 나이까지 직장에 남아 있는 비율은 줄어들고 있고 실제 지금도 그리 높지 않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중반이면 이미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퇴사에 대한 압력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 내 주위에도 50대 후반까지 버티고 계시는 분들은 많지 않다. 80이 넘어 살아 내야 하는 이 시대의 삶이라는 마라톤에서 이제 막 반환점을 돌고 나서 ‘자, 이제 달려 온 거리만큼 다시 힘 내고 뛰어 볼까’ 하는 찰나에 길 바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셈이다.



회사를 떠난다는 것은 단지 수입이 없어지고 경제활동을 할 자리가 사라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삶의 측면에서 볼 때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심리적인 상실감과 불안감이다. 이삼십 년 넘는 세월을 안정적인 직장을 다녔다면, 특별히 주식투자를 해서 돈을 많이 잃었다던가 사기를 당하지 않은 이상, 그 동안 모아둔 돈과 퇴직금, 연금 등을 바탕으로 여생을 보내는 데에 큰 문제가 없을 수는 있다. 진짜 문제는, 그 때까지 삶 속에서 직장은 그 사람의 정체성의 기반이었었다는 데에 있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아이덴티티의 깃발을 꽂아 두었던 땅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면서 그것을 꽂을 곳을 찾지 못해 상실감과 불안감, 그리고 자존감의 하락을 경험하는 동안 생의 의미에 흔들림이 감지되기 시작한다.



김정운 교수는 그의 저서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고령화 사회의 근본 문제는 ‘연금’이 아니다. 은퇴한 이들의 ‘아이덴티티’다. 자신의 사회적 존재를 확인할 방법을 상실한 이들에게, 남겨진 30여 년의 시간은 불안 그 자체다. 불안은 원래 미래가 불확실한 젊은이들의 정서다. 그러나 오늘날, 아무런 대책 없이 수십 년을 견뎌야 하는 ‘젊은 노인들’이 갈수록 늘어난다.”

 


지금 젊은 세대, 즉 20대에서 30대 초반은 직장과 일에 대해서 4050 세대와는 꽤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는 듯하다. 4050 세대는, 사실 그들의 사회 초년생 시절이던 때부터 직장과 일이 삶 속에서 거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었다. 사회적으로 그것이 당연시 요구되었었고, 각 개인들도 비교적 너그럽게 수용했었다. 즉, 그들의 삶에서 직장 내지는 일이라는 것은 가장 큰 우선순위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었고 그에 따라 정체성의 절대적인 기반이었다. 업무시간이 끝나도 동료나 상사, 또는 거래처 사람들과 밥 먹고 술 마시고 하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사회적 책무이자 삶을 구축해 나가기 위해 쌓는 벽돌 중 하나였다. 결국, 직장이 핵심 지반이 되고 그 위에 업무의 성취와 자기 성장의 만족이 더해가면서 삶의 의미가 자라나는, 그런 삶이 4050 및 그 이전 세대 대부분의 직장인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위기를 맞고 있다. 이미 언급했듯이 지금 4050 세대보다 더 이전 세대들은 평생직장 또는 그 비슷한 경제적 시스템이 그들의 삶의 오랜 기간 동안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었다. 하지만 현재의 4050 세대들은 그러한 기반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목격하고 있으며 그 과정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거나 앞으로 받아내야 할 상황이다. 거기다가 더 늦게 죽을 운명이라고 한다. 어쩌면 직장을 다녔던 시간 이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다른 직장을 찾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인정 받았던 만큼 왕년이 그립고 대우에 자존심이 남아나기 쉬울 리가 없다. 각오했다 하더라도 견뎌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창업 전선에 뛰어 들자니 목돈만 날릴 것 같기도 하고 이미 선배 퇴사자들이 닭 튀기는 자리를 선점하고 있으니 경쟁 또한 쉽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막상 퇴사가 현실로 다가오면 정말 큰 문제가 찾아 온다. 회사를 떠나면서 사라지는 건 비단 내 책상과 명함 그리고 직함 만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하게 된다. 그 동안 내가 누렸던 많은 혜택들, 직장을 기반으로 한 인간관계, 사회적인 대우 등 비가시적인 많은 것들이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을 눈 앞에서 목격하게 된다. 내 사회적 및 심리적 정체성의 기반 거의 전부가 직장이었음을, 퇴사를 하고 난 얼마 후 즈음부터 절실하게 깨닫기 시작하면서 가슴에 구멍이 뚫리고 지진계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 분들에게 앞으로 남은 30년 내외, 많게는 40에서 50년의 삶은 상실감과 불안감을 극복하는 동시에 새로운 정체성의 기반을 찾아야 하는 시간으로서 아주 어려운 시기가 될 수 있다. 그 동안 나 자신의 정체성을 든든하게 받쳐 주던 기반을 빼앗긴 후 맞이한 이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또 다른 새로운 기반을 찾거나 창조해 나가야 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오랜 세월을 공허하고 무의미하게 보내야 할 수 있고, 이는 견뎌 내기에 너무 가혹할 수 있다. 이제 4050 세대는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보조를 맞추어 나가면서 새롭게 기회를 만들어 내기 위해 지혜를 짜내고 행동을 실천해야 할 때이다.



오늘은 너무 부정적인 말과 함께 걱정을 너무 쏟아 내어 짜증스러운 글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어둠을 말하는 것은 빛을 더욱 눈부시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오늘 말씀 드린 위기를 헤쳐나가는 방법, 더 나아가서는 오히려 더 좋은 기회를 빚어 낼 수 있는 시대적 요건들이 성숙해 있음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 Featured Photo by Robert Metz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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