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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주 재미있게 보는 TV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채널A에서 방영하고 있는 ‘굿피플’이다. 로스쿨 재학생들이 방학 동안 로펌에 인턴으로 입사하여 실무 경험을 쌓고 평가를 받는 과정을 예능 형식으로 엮어내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에서 로펌과 인턴들이 업무를 하는 과정들이 나오는데, 이는 각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벌어지는 상황들을 촬영해서 편집한 것이다. 다만 인턴들이 미션을 수행하고 그 결과를 로펌 멘토 변호사들이 평가하며, 패널들이 그 평가 결과를 예측하는 등 예능적인 요소들을 가미했다.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초반에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임현서 인턴과 이시훈 인턴, 이 두 분이 펼치는 선의의 경쟁 구도는 긴장감과 더불어 팬심을 자극한다. 그래서 더욱 몰입과 감정 이입이 되는 것 같다. 본디 드라마적 요소의 재미는 주인공과 적대자의 대립, 그리고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위기의 고조와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오는데 이 예능 프로그램에는 그러한 드라마적 요소가 들어가 있다. 8명의 인턴과 멘토 변호사들 모두 주인공이지만 그 중에서도 초반에 뛰어난 성과를 내면서 마치 주인공들처럼 서로 경쟁하고 성장해 나가는 이 두 인턴들이 모습은 매우 흥미진진하다. 

이 두 분이 서로 상당히 다른 성향이라는 점은 더욱 극적인 요소를 더해 준다. 이시훈 인턴은 성실의 표본으로서 늘 노력하고 연구하며 끈기 있는 모습이며 사람들에게 상당히 친절하다. 반면 임현서 인턴은 뛰어난 머리와 감각의 소유자로서 다방면에 관심이 많고 놀라울 정도로 핵심을 잘 파악하며 임기응변에 뛰어나다. 굳이 빗대어 말하자면, 이시훈 인턴은 성실과 노력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고, 임현서 인턴은 타고난 천재성에 융통성을 겸비한 타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시훈 인턴도 천재적인 면이 분명 있고, 임현서 인턴도 밤 늦게까지 자문 준비를 하는 등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다만 두 인턴들의 우수한 면을 꼽아 보자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런 구도는 가장 흔하면서도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의 요건이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살리에르와 모짜르트의 그것과 아주 유사하다.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를 본 분들이 많이 계실지 모르겠다. 그 영화에서 살리에르는 패배자이면서 질투의 화신으로 그려지고 있다. 모두에게 인정받던 음악가였지만 타고난 천재인 모짜르트가 나타나면서 어느새 2인자로 밀려나고,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 봐도 천생의 유전자를 거스를 수 없어 좌절의 늪에 빠져 버리고 만다. 좌절감, 자괴감과 질투심이 섞여진 펄펄 끓는 지옥 속에서 그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결국 모짜르트의 죽음에도 관여하고 만다. 

굿피플에서 위의 두 인턴을 보면서 비슷한 구도를 느낄 수 있다. 의도치 않게 임현서 인턴과 이시훈 인턴이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되는 미션이 세 번 있었는데 모두 임현서 인턴이 승리한다. 성실과 노력으로 최선을 다하는 이시훈 인턴과 그를 응원하는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좀 기운 빠지는 모양새다. 그리고 실제로 임현서 인턴에 대해 점차 의식하게 되는 이시훈 인턴의 모습이 보여지면서 시청자들은 안타까운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패널들 사이에서조차 일등을 계속하는 임현서 인턴에게는 경외감을 아낌없이 보내면서도, 반면 경쟁에서 자꾸 지는 이시훈 인턴에게는 일종의 안타까움과 동정심을 느끼는 동시에 혹여 상처를 받거나 자신감을 잃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나도 비록 직접적인 인간관계는 아니지만 두 분 모두에게 애정이 느껴지는 터라, 이시훈 인턴이 걱정이 되기도 하고 스스로에 대해 실망을 하면 어떡하나 하는 염려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러한 감정들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누구도 두 인턴 분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본 것도 아니고 그 분들의 마음 속에 들어 갔다가 나온 것도 아니다. 그 프로그램의 패널들이나 시청자들, 그리고 저 자신도 ‘그럴 것’이라고 추측하고 느끼는 것일 뿐이다. 어떻게 보면 전혀 근거가 없는 감정이며 제 3자들이 그들만의 지렛대를 가지고 마음대로 만들어낸 기준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실제 그 인턴 분들은 오히려 우리가 추측하는 것과는 정 반대의 기분을 갖고 있을 수도 있고 정작 이시훈 인턴은 그러한 구도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을 수도 있을 지 모르는 일이다. 편집은 그러한 구도를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양념이 쳐져 있어서 시청자들은 더욱 자신의 추측에 강도를 더해 가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이 드니 그 동안 저를 비롯한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은 경쟁과 대결 구도가 권장되는 사회에서 승자와 패자, 1등과 2등의 감정과 기분, 그리고 그들의 삶과 미래에 대해 너무 함부로 추측하고 멋대로 만든 프레임의 잣대를 들이대 무례함을 범해 오지 않았는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1등과 승자는 자신감을 얻고 행복을 느낀다고 추측하고 2등이나 패자는 패배감에 몸부림치고 불행을 느끼며 질투와 시기심에 잠을 못 이룰 것으로 생각하곤 한다. 물론 당시에는 잠깐동안 그럴 수도 있고 성격에 따라서는 정도가 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중들은 그러한 상황이 그 사람들의 삶 내내 지속될 것으로 추정하는 경향이 짙은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정작 본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거나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배움을 얻을 수도 있기에 고마운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들이 서로 적대적이고 경쟁적일 거라 추측하는 것도 확률이 그리 높은 베팅은 아닌 것 같다. 그건 극적인 스토리텔링을 즐기는 시청자들이 제 3자의 관점 하에 흥미를 돋우며 감정을 이입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인위적인 프레임일 수 있으며 인류의 역사에서 극적인 주인공과 경쟁자 내지는 적대자 관계로 입맛을 돋우웠던 전통적인 스토리텔링의 유산일 수도 있다.

우리의 삶에서 경쟁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그리 오랜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호전적이고 경쟁심에 불타는 사람들이야 지하철에 자리 잡는 것도 경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아닌가요?) 그리고 우승자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서로가 그들의 삶을 충분히 풍요롭고 아름답게 가꾸어 간다. 아주 잠깐 의식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순간을 밥 먹고 일 하는 내내 가슴 속에 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잠깐 모짜르트와 살리에르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도록 하자. 우리는 위에서 든 예처럼 영화와 기타 여러 구전에 근거해서 살리에르가 모짜르트, 그리고 그의 천재성에 열등감을 심하게 느끼고 질투에 불타 있었다고 생각하며 그걸 사실로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역사적 증거들에 의하면 살리에르의 좌절과 질투, 그리고 그와 관련된 적대적인 관계의 증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물론 살리에르가 사람인지라 모짜르트에게 질투나 부러움의 감정을 전혀 느끼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려진 것처럼 과장되게, 그리고 살리에르 자신의 삶까지 망쳐 가면서 평생을 질투심과 시기심, 분노 속에서 살다가 죽어 갔다는 건 과장도 아주 심한 과장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한다. 심지어 모짜르트의 사망에 어떤 역할을 했다는 증거도 없을 뿐 아니라, 그러한 극적인 과장은 그들 사이의 긴장관계를 주목하고 그에 지나치게 비중을 둔 모짜르트 측근과 추종자들에 의해 부풀려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고 한다. 즉, 비록 살리에르가 모짜르트를 싫어하거나 질투했을 수는 있어도 그것이 그의 삶에서 행복감과 자신감을 상실할 정도로 강하게 오랫동안 지배했다는 식의 이야기는 전혀 근거가 없는 소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를 살아 내고 있는 타인의 삶에 대한 추측을 너무 쉽게 하는 데 익숙해져 있는 듯하다. 이는 저로서도 반성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타인이 겪고 있는 일들과 과정, 관계들 속에서 그들이 갖고 있는 생각, 감정, 느낌들은 오로지 그들 자신만이 아는 것이고, 그것들은 누구에 의해서도 쉽게 판단되거나 침범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사람들이 그를 보는 눈으로 고착되어 버린다면 자칫 그에게 실제로 상처가 되거나 고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삶의 공간은 생각보다 넓고 생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승자가 패자가 되기도 하며, 일등이 꼴찌가 될 때도 있을 것이다. 일등이 행복하고 이등이 불행한 것도 아니며, ABBA의 노랫말과는 다르게 승자만 모든 것을 가지는 것도 아니다. 사실 일등이나 이등, 승자나 패자, 이런 모든 정의들 자체가 너무 희미하고 경계가 모호하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느끼는 가치의 무게감이 다양하고 각자가 살아내는 비중이 다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섣불리 어떤 일차원적인 단초만을 갖고 남의 감정과 삶의 무게감을 재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열정과 노력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굿피플의 모든 인턴 분들을 보면 내 사회 초년이 떠오른다. 그래서 그 모든 분들을 응원하게 되고 애정을 느끼게 된다. 길고 긴 인생에서 한 순간의 일등, 이등, 그런 것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 어떤 결과나 성취도 모두에게 더없이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그들 각자의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응원한다.

 

 

[ Featured Photo by Andrey Konstantinov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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