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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글을 쓰기가 힘들었던 이유

주형진 2019. 5. 20. 00:12

 

쓴 글들을 나중에 읽어 보면 언제나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럽다. 오타나 비문이 마구 발견되기도 하고 어떤 글은 논리구조가 참 어설프다. 수정을 해도 그런 참혹한 결과가 나오니 어떤 때에는 난감함을 넘어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도 글을 쓴다는 건 종점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생각하기에 오그라드는 손을 참아가면서 오늘도 쓴다. 

글을 쓰는 게 늘 어렵다지만,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블로그에 글 하나 제대로 올리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막막하고 두려웠던 적이 있다. 사실 이전에 워드프레스와 관련된 매뉴얼 성격의 전자책을 하나 냈었다. 그 책은 내가 수행하던 일의 과정을 독자에게 알려 드리는 일종의 매뉴얼 내지는 교재 같은 성격이어서 쓰는 데 그리 큰 어려움은 느끼지 않았다. 어리석게도 그 경험을 마치 글 쓰는 장애물의 통과 티켓인 마냥 우쭐대면서 글쓰기를 만만하게 여겼나 보다. 그 교만함을 안고 블로그에 글을 써보려고 했는데, 한 동안 하나의 포스팅도 올릴 수가 없었다.

시작조차 어려운 시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미루는 데에 대한 익숙함과 변명은 늘어가기만 했다. 결국 글을 쓴다는 것, 텍스트 콘텐츠를 생산해 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로 스스로에게 깊이 각인된 것 같다. 그 이후로 글을 다시 쓰게 되기까지 꽤 오랜 기간이 걸렸다.

과연 나로 하여금 글 한 편 쓰기가 그리 어렵게 만든(물론 지금도 쉽지 않지만 그래도 어쨌든 써 지기는 하니까 말이죠) 이유는 뭘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혹시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기에 한 번 적어 보도록 한다.



1. 쓰다가 말았다.

막상 무언가를 쓰려고 하얀 백지나 화면을 마주하면 참 난감해 진다. 의지에 앉기 전 까지는 뭔가 잘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뿜뿜 넘치다가도 글자를 한 자, 두 자, 써내려 가기 시작하면서 그 자신감의 수치가 자꾸 떨어지고 만다. 사실 어떤 경우에는 첫 문장, 첫 단락을 완결하기도 어렵다. 갑자기 내가 무엇을 쓰려고 했는지 헷갈릴 정도로 머리가 하얗게 되기도 한다. 말도 꼬이는 것 같고 급 피곤해진다. 그래서 일단 중지하고 머리를 쉰다. 시작했던 하나의 글은 그렇게 기약 없이 창고 속으로 내동댕이쳐져서 먼지가 내려 않고 만다. 
이것이 내가 글을 하나도 제대로 쓰기 힘들었을 때 반복했던 가장 전형적인 패턴의 모습이다. 제목조차 채 못 붙인 것도 있었다. 어떤 폴더를 열어 보니 제목만 달리고 내용은 미처 끝까지 완성하지 못한 글들이 꽤 많다. 너무나도 안 좋은 모습이다. 이런 미완성이 반복되다 보면 습관이 되어 버리고 만다. 습관도 힘이 생겨 벗어나기 쉽지 않게 된다.
중요한 것은, 글을 시작했으면 일단 그 글을 마치도록 해야 한다. 완성도는 그 후의 이야기다. 내가 쓴 글은 내가 언제나 수정하고 다듬을 수 있다. 골조밖에 없는 집이라도 상관 없다. 벽돌을 올리고 콘크리트를 붙이고 인테리어를 하는 건 일단 뼈대를 만들어 놓아야 해 볼 수 있는 일이 된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어떻게든 억지로라도 완성한 글 중에 괜찮은 것들이 꽤 많다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줌으로써 앞으로 전진할 수 있도록 하는 에너지가 된다. 
글을 쓰다 마는 것은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좋지 않다. 시작했으면 엉덩이를 붙이고 마무리까지 써 내야 한다. 부족함에 몸 둘 바를 모르고 온 몸이 홍조로 뒤덮이게 되더라도 상관 없다. 시작하고 끝을 맺는 하나의 역사가 글을 쓰는 근육을 만든다. 이를 위한 팁이나 기교는 없다. 한 동안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딴청을 하더라도 일단 열었던 새 파일에 하나의 글을 끝 맺고 저장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는 포기하지 않는 인내와 의지를 기르는 것이 글을 쓰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요건이다.


2. 잘 쓰려고 했다.

책을 발간하거나 포스팅을 발행하기 전까지 내가 쓴 글은 누구도 볼 수 없다. 스스로가 맘에 들지 않다면 컴퓨터에 저장해 놓고 끝내면 그만이다. 그래도 ‘글’이라 그런지 부담이 되기 마련이다. 이왕이면 잘 쓰고 싶고, 남들이 혹여 보기라도 한다면 잘 썼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것이 본능적인 욕망이다. 그래서 목이 경직되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이렇게 부담을 느끼는 것은 쓰다가 말게 되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도 너무 잘 쓰려는 욕심을 부리다 보니, 오히려 자괴감은 늘어 가고 자신감은 잃어 버려 글 쓰기의 포기를 반복하는 우를 범하기 일쑤였다.
힘이 들어가는 이유는 스스로에 대한 만족과도 관련이 있지만 주로 타인, 즉 독자를 지나치게 의식하기 때문이다. 잘 쓰려는 의지는 높이 살 만하지만 지나친 긴장은 글 쓰는 것 자체를 방해하기 쉽다. 이런 상태에서 나온 글은 내용이 경직되고 무거워질 수 있다. 연습할 때는 잘 하던 사람이 실제 발표나 경기에 들어가면 떨어서 형편 없이 나쁜 결과를 내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부담을 너무 갖거나 어깨에 힘이 지나치게 들어가면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잘 쓰려는 데에 지나치게 의식하면 힘만 주다가 얼마 쓰지 못하고 제 풀에 지쳐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잘 쓰는 건 눈이나 손이나 어깨의 몫이 아니라 엉덩이의 역할이다. 끈기를 갖고 끝까지 써내려 간 후에 몇 번이고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치기를 반복하는 인내심에서 나오는 결과다. 아무리 잘 쓰려고 해도 처음부터 잘 쓸 수 있는 천재는 드물다. 욕심 내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일단 끝까지 글을 써보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3. 할 말을 너무 많이 담으려고 했다.

광고를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 컨셉을 잡는 일이다. 컨셉은 잠재고객들에게 알리기 위해 도출해낸 ‘우리 제품은 이러한 특징이 있다’는 메시지다. 예를 들어 ‘우리 차는 조용합니다’는 것이 컨셉에 기반한 대 소비자 커뮤니케이션 메시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금기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컨셉을 여러 개 잡는 것이다. ‘우리 차는 조용하고 제동력이 탁월하며 유럽형 디자인입니다’라고 말하면 언뜻 보기에는 잠재고객들에게 더 많은 장점들을 제공하기에 보다 효과적일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과학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핵심 메시지가 여러 개 주어지면 개별 메시지들에 대한 주의력이 감소하게 되고 그에 따라 그 중의 어느 하나조차 머리 속에 심어지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부가적인 것들은 과감히 버리고 핵심적인 주장 한가지만을 집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점이다. 이는 광고뿐 아니라 글도 마찬가지다.
글은 한정된 지면 또는 화면을 통해서 제한된 시간 동안 독자들에게 할애된다. 짧은 시간 동안 하나의 글 속에 너무 많은 핵심 주제들이 전달되면 읽는 사람은 혼란스럽고 지루해질 수 있다. 결국 다 읽고 나서 뚜렷하게 머리에 남는 주제나 내용은 막상 없을 수 있다. 쓰는 사람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주제들을 담아 보려고 욕심을 내다 보면 중구난방 구성이 엉망이 되기도 하고 일관성과 논리성도 약해질 수 있다. 또한 글을 다 쓴 후에도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한 것인지 혼란스러워질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하나의 글에 가급적 핵심 주제 하나만 담는다면 여러분의 글 쓰기도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글은 엉덩이로 쓰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운전은 차를 타야 하고 설거지는 손에 물을 묻혀야 하는 것처럼 글 쓰는 데 있어서 이처럼 정확한 말은 없는 것 같다. 인내심은 갖고, 부담은 내려 놓으며, 욕심은 버린다면, 글 쓰기는 그리 어렵지 않은, 아니 아주 즐거운 행위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 Featured Photo by Kaitlyn Baker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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