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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어쨌든, 가볍게 살기

주형진 2019. 5. 29. 15:30

 

재작년 어느 날, 갑자기 집에 너무 쓸 데 없는 물건들이 많다는 생각에 많은 물건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이사 온 지 30년이 다 되어 가는 집. 리모델링은 커녕 도배나 장판조차 새로 한 번 한 적이 없는 집이라 그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짐들이 꽤 많았다. 바깥만 보던 눈을 안으로 돌리니 있어야 할 것들보다 없어도 될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 보였고, 그것들은 짐처럼 느껴져 괜스레 내 어깨를 짓누르는 듯했다. 조만간 이사를 하겠다는 어렴풋한 계획도 버리기 혁명에 한 이유가 되어 주었다.

어떤 뚜렷한 계획 없이 무작정 버리기 시작했다. 정리는 그 다음 일이었다. 버리고, 버리고, 또 버리고. 그리고 더 버릴 것이 없나 찾는 작업이 일주일이 되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그 물건들이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경악했다. 언젠가 찾다 찾다 못 찾아 잃어 버렸다 생각했던 것들이 튀어 나오고, 도저히 우리 가족이 들여 왔을 거라 생각하기 힘든 물건도 고개를 내밀었다. 창고까지 뒤져서 버릴 것을 찾으니 근처 고물상에나 있을 법한 물건까지 세상에 도로 튀어 나왔다. 선물 받았지만 이십 년 넘게 쓴 적이 없는 유리컵 몇 박스도 있었다. 몇 년 간 입지 않았던 옷들도 버렸고, 아쉽지만 굳이 두지 않아도 읽을 것 같지 않은 책들도 꽤 버리거나 중고서점에 팔았다.

얼추 한바탕 버리기 축제를 마무리해 보니 그 부피도 어마어마했을 뿐 아니라 무게도 족히 1톤 반이 넘는 것 같았다. 버리기 위해 빼어 내 엎었던 많은 것들을 다시 정리 정돈해야 했고, 그 덕에 집 구석 구석도 꽤 간결해지고 시원해졌다. 한결 덜어낸 집의 무게는 내 마음도 가볍게 했다. 실제 내 마음 속에 있는 짐이 가벼워진 것이 아님에도 그랬다. 가벼움은 기분으로도 전이되나 보다, 느꼈다. 이래서 미니멀라이프니 정리니 하는 것이 유행이구나, 이유 있었구나, 이해됐다.


집의 물건도 이런데 하물며 마음 속 쓰레기들은 어떨까,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누구나 참 많은 짐을 이고 살아 간다. 그래서 모두의 어깨는 무겁다. 누구나 참 많은 생각을 담고 살아 간다. 그래서 그들의 머리도 무겁다. 집이야 한바탕 대청소를 하고 나면 비워지지만, 마음은 안 그런가 보다. 그게 쉽지 않다. 가끔 지하철 역 퇴근길에서 사람들을 본다. 가방에서, 표정에서, 걸음걸이에서, 사람들이 지고 돌아 가는 무게를 본다. 그들 중에도 나의 무게를 보는 사람도 있을 게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 지워 주는 무게, 돈 걱정이 주는 무게, 과중한 업무가 옥죄면서 누르는 무게, 나를 믿고 의지하는 이들에 대한 책임감의 무게 등등. 그게 다 삶의 무게에 다름 아니다. 그 짐들에는 필요한 것들도 있지만 쓸모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집 사정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마음을, 생각을 비워내기 시작했다. 자주 내 마음 속을 들여다 보고 불순물을 정화해 내려고 애쓴다. 주기적으로 시간을 내서 명상을 하고 자주 멍해 지기도 한다. 조용한 밤에 고전을 읽고 마음을 편하게 하는 음악을 듣기도 한다. 나의 비워내기 작업이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쌓여 가는 불필요한 생각과 감정들이 쌓인다. 모두 쓰레기 봉투에 담아 버린다. 온갖 잠념, 분노와 낙담의 감정,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와 걱정 등을 처리하는 작업이다. 놀라운 건 버리기 위해 찾아 내는 쓰레기들이 참 많다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이 짐들을 다 이고 매일을 살아 가고 있었나 가끔 놀란다. 별 것도 아닐 수 있는 이 작업에 의해서 나는 정신의 자유를, 쓸데 없는 생각으로부터의 평화를 얻는다. 

누구라도 버리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가장 좋은 건 비운 채로 살아 가는 것일 테지만, 이 시대의 삶에서 그건 불가능일 것이다. 차선책은 가볍게 살기. 그러기 위해서 자주, 의식적으로 비워내고 덜어낼 필요가 있다. 버리기도 습관이 된다. 몇 번 반복하면 쉬워지고, 심지어는 재미도 있다. 

 

 

[ Photo by Jesus Kiteque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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