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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가끔 운전한다. 구입한 지 12년이 넘은 차의 주행거리가 갓 5만 킬로밖에 안 된다. 초기 3년 정도만 열심히 타고 다녔다. 그 이후로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날들이 더 많았다. 사고는 초기에 두 번 났었다. 한 번은 내가, 다른 한 번은 상대방이 원인을 제공했다. 하지만 두 번 모두 내가 감정을 조금만 제대로 조절했다면 나지 않을 사고였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예전엔 참 험하게 몰고 다녔던 것 같다.

둘 다 접촉사고에 불과하긴 했지만 어쨌든 사고를 당해 보기도 하고, 사고 난 것도 많이 보기도 했고, 인터넷에서 사고 블랙박스 영상들도 접하기도 하면서 언제부턴가 차를 몰기가 무섭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졌다. 거기에다, 직장을 옮기면서 출퇴근에 굳이 차를 갖고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히 내 차는 주말 마트 장보기용, 또는 어머니 병원 정기 진료용 이외에는 거의 타지 않게 되었다. 

 

비록 가끔 하는 운전이기는 하지만, 요즘엔 언제나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켜고 나서 조용히 눈을 감고 심호흡을 몇 번 한다. 짧다면 짧은 그 시간에 나는 한 가지 생각만 두고 나머지는 버리는 작업을 한다. 그 한 가지 생각은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간다’는 약속이다. 운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목적한 곳으로 가되 안전하게 가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가는 것. 다른 운전자와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가는 것, 이런 저런 신경을 쓰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가는 것. 그 이외에는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 내 생각과 마음 속에 그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도록 한다. 나머지는 다 버리는 것이다.

이런 시간을 갖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내가 운전대만 잡으면 여러 잡다한 감정에 쉽게 휩쓸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절대 난폭운전을 하거나 교통위반을 밥 먹듯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운전을 하다 비상식적인 행위를 하는 운전자를 만나면 신경을 쓰고 쉽사리 화가 나기 시작한다. 가뜩이나 긴장 되는 운전이라는 행위에 그런 신경 쓰이는 일들이 끼여 들면 내면이 쉽게 무너져 버리고 만다. 한 번 흔들리기 시작하면 운전을 하는 원래의 목적은 온데간데 없고 감정이 내 마음을 지배하게 된다. 많은 운전자들이 도로 위에서 다른 사람이 되고 사고를 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한 번의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 그 한 번의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빈틈 없이 나를 조절하고 다독여야 한다. 그래서 운전을 시작하기 전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도로에서 쓸모 없는 데에 신경을 두게 되지 않도록, 마음에 화가 솟을 것 같으면 그 싹부터 완벽히 없애버릴 수 있도록 내가 목적으로 하는 것 이외에는 어떤 것에도 마음을 두지 않게 모든 것을 완벽하게 버리는 의식을 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게 아주 효과가 있다.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겠다는 약속 이외에는 어떤 것도 개입될 수 없기에 내가 신경 쓸 것은 너무 간단하다. 그것에만 집중하면 된다. 웬만한 건 참게 된다. 신경 꺼버리면 그만이다. 내가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지 않는 이상 신경 쓰지 않을 여유와 공간이 생긴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조심해서 운전하게 되고 방어 운전을 유지하게 된다. 

 

우리는 살면서 어떤 행위를 할 때에는 가장 근본적인 약속과 목적 이외에 부수적이고 잡다한 많은 것들은 버릴 필요가 있다. 어떤 일을 하든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시간이 소요된다. 그 시간 동안에는 예상했거나 그러지 못했던 많은 일들이 생긴다. 그런 일들 하나 하나에 눈길을 주고 마음을 두면 가장 중요한 원래 목적을 잊기 쉽다. 그래서 자주 우리는 가장 중요한 약속을 되새기고 나머지 것들은 가급적 버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은 법이다.

 

 

[ Featured Photo by dan carlson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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