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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대행사에 근무할 때 마케팅 리서치 팀과 자주 했었던 일 중 한 가지가 FGI(Focus Group Interview)였다. 담당했던 브랜드의 목표 고객이나 기존 고객들을 초청해서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는 일이었다.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로서 매우 유용한 과정이었다. 질문에 대한 답변뿐 아니라 그 밖의 다양한 의견이나 조언들도 수렴했다. 그 중 많은 부분을 반영할 수 있었고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우선, 그 분들의 답변이나 의견이 진실된 것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다. FGI는 인위적인 상황 하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대상자들은 회사가 담당하는 브랜드에 대해 눈치를 챈다. 따라서 암묵적으로 편향을 유도하거나 부정확한 답변을 야기하는 요소가 개입될 가능성이 높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말이다. 우리는 그 분들의 마음 속에 들어 갔다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다. 그래서인지, 다른 방법의 조사 결과와 맥락이 전혀 맞지 않기도 하고 전략 실행 과정에서 치명적인 예측 오류가 발생하기도 해서 난감한 적이 꽤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뉴로마케팅을 활용하면, 비록 백 퍼센트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신뢰할 수 있는 수준 내에서 이런 한계나 오류를 최대한 극복할 수 있다. 뉴로마케팅(Neuromarketing)이란 뇌신경의학적 기술과 장비를 이용해서 마케팅 연관 자극들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 인지, 태도 등을 연구하는 활동이다. 뇌신경세포를 뜻하는 뉴런(neuron)과 마케팅(marketing)을 결합한 단어가 말 그대로 뉴로마케팅이다.

 

우리의 뇌는 시각, 촉각, 후각, 미각, 청각 등 오감뿐 아니라 다양한 인지 유발 자극에 대해 반응한다. 이 반응은 감정이나 생각의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부위에서 저마다 다른 연결 형태와 강도로 발생한다. 뇌신경과학 장비를 이용하면 뇌에서 일어나는 반응의 부위, 형태, 강도 등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확인된 영상을 분석하면 어떤 감정이나 정서를 느끼는 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진이나 단어가 시각이나 청각적으로 주어지면 그에 대해 특징적 반응(예를 들면 좋거나 싫다는 식의 반응)이 뇌 속 의 서로 다른 부위와 연결 형태로 즉시 발현하는데 이 상태를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정보는 무의식적이고 감정적이며 즉각적인 반응뿐 아니라 합리적인 생각을 거치는 지에 대해서까지도 유용한 지식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서 소비자의 반응, 태도와 함께 행동까지도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뉴로마케팅을 활용해 마케팅조사를 실시하면 소비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의 뇌에서 일어나는 실증적 현상을 곧바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직접적이고 즉각적이며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의식과 생각이라는 가공과정을 거치기 전에 일어나는 무의식적 감정 반응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에 편향이나 위조의 가능성을 거의 배제할 수 있다.

 

뉴로마케팅에 활용되는 장비는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활발히 사용되고 있는 장비는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다. 어떤 자극에 대해 반응을 할 때 뇌의 활성화 부위와 구조 및 강도 등 종합적 현상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장비다.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를 이용하면 조사 대상자의 머리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인지, 어떤 것을 선호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등을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어 의학적,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fMRI 이외에도 EEG(뇌파기록장치, Electroencephalography)나 MEG(뇌자도, Magnetoencephalography) 등이 있다. 사실 이런 장비들은 매우 가격이 비싸고 검사 방법도 상대적으로 까다로워서 대안적인 장비와 기술들도 사용되고 있다. 아이 트래킹이나 심박 측정, 피부전도도 측정이나 얼굴 표정, 휴먼 제스처 등이다. 이러한 장비를 이용하면 소비자의 뇌 속에서 뇌파의 변화가 어떻게 발생되는지, 시선이 어떻게 이동하는지, 표정이나 몸짓에 어떤 특이적인 반응이 일어나는지 추적 관찰할 수 있다.

 

뉴로마케팅을 이용한 마케팅 조사분석이 처음 실시된 케이스는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블라인드 테스트로 알려져 있다. 브랜드를 알려 주지 않고 두 콜라를 마시게 했을 때와 알려 준 후 마시게 했을 때 뇌의 반응을 fMRI를 사용해 확인해 보았다. 그 결과 전자의 경우에는 동일한 뇌 부위에 반응이 일어났으나, 후자의 경우에는 코카콜라를 마실 때에만 피험자의 정서와 기억이 반응하는 뇌 부위가 반응했다. 즉 코카콜라라는 브랜드에 대해 인지를 하고 감정적 반응을 보인 것이다. 결국 코카콜라의 브랜드는 펩시콜라보다 소비자의 뇌 속에 강력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는 기아자동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2009년 기아자동차가 신차의 라인업에 붙일 브랜드 네임을 고민하고 있었다. 기아자동차 측은 이미 알파뉴머릭(알파벳과 숫자의 조합, alphanumeric) 형태의 이름을 확정하고 과연 소비자가 선호하는 알파벳과 숫자 조합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었다. 이를 위해서 KAIST 바이오 뇌공학 전문가들과 함께 한국인과 외국인 각각 100명 씩을 모집해 fMRI로 선호 반응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K7’이 가장 좋은 반응을 기록해서 결국 새로운 이름으로 선정되었다.

 

해외와 국내의 대표적인 사례는 위와 같지만 알게 모르게 세계적인 기업들은 뉴로마케팅에 관한 연구와 활용에 적극 나서고 있는 모양새다. 앞으로 뇌신경과학, 심리학, 의학장비 기술 등의 발전과 함께 뉴로마케팅 기법과 기술에도 많은 변화가 기대된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뉴로마케팅이 마케팅 조사방법에 있어서 절대적인 것으로 과장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다른 방법에 비해 뇌신경과학적 조사의 정확도가 비교적 높다고 하더라도 현실적, 인문적, 윤리적 측면 등에서 풀어야 할 여러 숙제들이 있고 분야에 따라서는 적용 가능성의 난제가 따를 수 있다. 즉, 어디까지나 기존 마케팅 조사방법들과 함께 서로 협력적이고 보완적인 관계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마케팅은 디지털 시대를 맞이해서 큰 변화와 발전을 이루고 있다. 뇌신경과학의 발전도 마케팅 영역에 적지 않은 혁신을 가져다 줄 수 있을 지 모른다. 마케터로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



< 참조 >
“세계가 놀란 k7, 뉴로마케팅의 승리”, 동아비즈니스리뷰 58호, 2010년 6월 Issue1
“감성 뉴로마케팅 기술”, 기술과 경영, 2014년 12월호
“What is Neuromarketing?”, Neuromarketing by Roger Dooley, https://www.neurosciencemarketing.com/blog/articles/what-is-neuromarketing.htm
“마케팅과 뇌과학의 만남 – 뉴로마케팅”, LG Business Insight, 2009년 2월 18일

 

 

[ Photo by Nikolai Chernichenko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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