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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 중독 사이

 

이렇듯 도파민은 우리 삶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호르몬이지만 바람직하지 못한 환경이 조성되거나 잘못 사용될 때에는 큰 문제를 일으킨다. 어떠한 이유로 뇌에 도파민이 지나치게 급격한 속도로 일정 수준 이상 많아지는 경우 우리는 비정상적으로 과한 쾌감과 보상 추구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 신체의 모든 부분은 항상성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따라서 이 경우에 뇌는 도파민 수용체 수를 줄이거나 구조를 변형시키는 등의 방식으로 감수성을 떨어뜨린다. 그 결과, 다음에는 같은 수준의 쾌감을 위해서 더욱 강한 자극이 요구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렇게 점점 더 많은 자극을 요구하게 되는 현상을 ‘양성강화’라고 한다. 양성강화는 중독의 원인이 되는 메커니즘 중 하나이다.

중독을 야기하는 약물은 뇌 속에 도파민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다. 비록 약물의 종류마다 중독 증상을 야기하는 기전은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대부분 도파민 신경 회로에 작용해 그 수준을 급격히 높임으로써 시스템을 파괴하고 심각한 의존 성향을 야기하는 작용은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물들은 도파민 회로에 속하는 부위의 뉴런 시냅스의 성질이나 구조를 변화시킴으로써 도파민이 지나치게 분비되게 하거나 정상적인 재흡수 활동을 방해하는 등의 방식으로 비정상화를 초래한다. 혼란된 시스템은 재강화 성향을 보이면서 점진적으로 더 많은 양의 도파민을 요구하게 된다. 이것이 치명적인 약물 중독이다. 사실 담배나 술도 오래 지속하게 되면 이와 비슷한 기전으로 중독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도파민이 부족해져도 문제가 발생한다. 우선 도파민 경로 중 하나인 ‘흑질-선조체’ 신경경로에 도파민 분비가 적어지면 우리가 잘 아는 ‘파킨슨 병’이 발생한다. 이 경로의 도파민은 몸의 움직임을 유도하고 적절히 제어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부족해질 경우 움직임을 시작하기가 어려워지고 적절하며 유연한 동작을 구사하는 것이 힘들어진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 경로의 도파민은 정신적인 동기 대신 신체적인 동기가 행위로 전환되는 것에 관여하는 것인 셈이다. 또한 뇌 전체에서 도파민이 부족하면 의욕이 저하되고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생기며 원래 관심을 갖던 일에도 갑자기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될 수 있다. 

결국 모든 것이 그렇듯 도파민도 지나치게 과하거나 모자라지 않는 수준이 바람직하다. 정상적인 동기-보상 시스템에 의해 작동하는 생활 속 일반적인 행위들은 도파민의 수치가 필요 이상으로 급격하게 증가하거나 줄어드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생존에 필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몸에 영양분이 부족한데도 식욕을 느끼지 못한다거나 지식에 대한 성취욕구가 전혀 없다면 생존이나 진화에도 불리할 것이다. 실제로 서울대 의대 이경민 교수에 따르면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때 도파민 분비가 50% 증가하며, 섹스를 할 때에는 최대 100%까지 상승한다고 한다. 반면 바로 중독을 야기하는 약물들은 극단적이다. 코카인을 흡입하면 350%가 상승하고 메스암페타민의 경우에는 무려 1200%까지 높아진다고 한다. 즉 어느 정도 범위 내의 도파민 수준 상승은 일상에서 당연하며 정상적이고 흔한 일인 것이다.



마케팅의 호르몬, 도파민

 

도파민은 쾌락의 호르몬이라는 극단적 별칭이 억울할 만하다. 우리가 정상적이고 의욕적으로 생활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친구이기 때문이다. 도파민이 없다면 신나게 쇼핑을 하거나 어떤 브랜드나 제품에 애정을 갖는 소비자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물건을 사거나 좋아하는 연예인에 열광하는 것, 내가 응원하는 팀의 승리에 기뻐하는 모습 등을 비정상이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주 정상적인 동기-보상 추구 행위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정상적 행위라도 그 행위에 지나치게 몰입해 삶의 다른 면이 침해를 받거나 중단이나 감소가 절대 불가능한 상태가 되면 중독이라고 볼 수 있다. 

원하는 물건을 구매하거나 좋아하는 브랜드의 제품을 손에 넣는 행위를 할 때에도 우리 뇌에서는 도파민이 분비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원하던 제품을 구매하고 난 다음이 아니라 그 전에 가장 도파민이 활발하게 분비된다고 한다. 즉 성취의 만족감 뿐 아니라 보상에 대한 기대감도 도파민 분비를 강하게 자극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분명한 것은 도파민이 만족스러운 제품이나 서비스 등을 경험할 때 분비되고 그 경험을 다시 추구하게 되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소비자가 만족스럽고 행복한 경험을 하는 것은 보상의 역할을 한다. 지나간 좋은 경험은 기억되어 재경험을 추구하는 동기가 된다. 동기는 곧 도파민의 수준을 향상시켜 기대를 높인다. 그리고 다시 만족스러운 경험을 받게 되면 그 동기는 두 번째의 보상을 받는다. 이렇게 반복되는 경험은 소비자의 기억 속에 견고하게 자리를 잡기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제품과 서비스, 브랜드 및 기타 주변 요소들이 의식과 무의식 속에 잠재하기 시작한다. 더불어 무의식적인 강화는 습관적인 구매를 유도할 수 있게 만든다. 이는 곧 고객의 충성도(Loyalty)를 높인다. 또한 구매 시점에서 강력하게 발휘될 수 있는 이용가능성 휴리스틱의 자양분이 된다.

도파민 회로에 의한 보상 시스템의 성질 중 특이한 점을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자꾸 조금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도파민은 지루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새로운 자극에 더욱 강하게 분비된다. 이를 고려한다면 늘 새롭고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고객의 충성도를 잃지 않을 수 있다. 기업들이 자주 흥미로운 이벤트를 진행하고 해마다 업그레이드된 버전의 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하는 이유다. 그렇지 않으면 고객의 뇌는 지루함을 느끼고 싫증을 내고 떠나 버리기 때문이다.

혹시 습관적으로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자신을 발견한 적이 있는가? 아마 적어도 한두 개쯤은 기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왜 그러는지 생각해 본 적은 있는가? 일종의 습관일 것이다. 습관은 약한 중독, 적절한 수준의 중독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계기에 의해서 처음 접한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 만족한 후 그 기억과 신뢰를 바탕으로 수 회 이상 재경험을 하면서 해당 동기-보상 행위에 관여하는 신경회로가 강화된 것이다. 강화된 행위의 신경회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습관적으로 그 제품을 집어들거나 서비스를 이용하게 만든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fMRI 실험에서 코카콜라에 반응을 즉각 보인 것은 소비자들의 뇌 속에 강하게 자리잡은 코카콜라 브랜드에 대한 만족 경험과 구매 습관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물론 도파민이 우리의 쾌감을 책임지는 유일하며 절대적인 물질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분명 동기-보상 회로 시스템에서 작용해 많은 태도와 행동을 유도하는 호르몬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앞으로 더 많은 비밀이 파헤쳐질 것이고 어떤 반전이 있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도파민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며 정상적인 범위 내에서의 상승은 삶에 다양한 즐거움과 보람, 의욕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도파민, 그리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신경심리학적 연구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 Photo by Melanie Pongratz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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