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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블랙 케이스의 컴퓨터 본체가 방에 들어왔다. 블랙베젤의 모니터와 역시 블랙의 스피커와 우퍼가 조화롭다. 아뿔싸, 그런데 키보드와 마우스는 빛깔이 바랜 흰 색이다. 자꾸 신경 쓰인다. 어울리지 않는 느낌... 블랙으로 다 바꿔 버려야 하나...

그 동안 눈 도장만 찍고 있던 멋진 드레스를 드디어 샀다. 내 품격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 것 같다. 내일 파티에는 이걸 입고 나가야겠다. 그런데... 구두하고 가방이 영 격에 안 어울리는 것 같다. 부담은 되지만 아무래도 이 것들도 명품으로 갈아 타야 할 것 같다.

집을 새로 리모델링 했다. 원래 있던 가구와 가전제품이 모던하고 심플한 분위기에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어차피 많이 낡아서 바꾸려던 참이고 해서 어울리는 디자인으로 모두 새로 들여 놓기로 했다.

 


 

 

뭔가 바뀌거나 변화가 있을 때 덩달아 다른 것들도 그에 맞게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옷을 사면 그에 맞는 신발이 필요하고, 신발을 바꾸면 가방이 안 어울리는 것 같아 눈길이 자꾸 가는 식이다. 또한 어떤 시리즈 상품을 사면 후속 제품도 가져야 할 것 같고 세트 제품은 완벽하게 짝을 맞추어 갖춰야 직성이 풀리는 등의 심리도 마찬가지다.

이런 심리를 ‘디드로 효과(Diderot effect)’라고 한다. 디드로는 18세기 프랑스 철학자다. 정확한 이름은 Denis Diderot(1713-1784)이다. 디드로는 그의 에세이 ‘나의 오래된 가운을 버림으로 인한 후회’에서 자신이 겪은 경험 하나를 소개한다. 친구에게서 붉은 색 고급 가운을 선물 받고 기존의 가운을 버렸더니 집 안에 있는 가구들이 새 가운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이 자꾸 들어서 결국 집 안의 모든 가구와 인테리어를 바꿔 버리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결국 그는 가운 하나 때문에 거금을 들여 가면서까지 다른 것들을 바꾸게 된 자신에 대해 다소 어이 없어 한다. 

정작 이러한 현상에 디드로 효과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그 자신이 아니라 그랜트 맥크라켄(Grant McCracken)이라는 인류학자가 1988년 자신의 저서 ‘문화와 소비’에서였다. 그는 이 책에서 디드로 효과를 제품의 상호보완적 물건이나 문화적 연결성을 가진 물건과 소비자 간의 상호작용이라고 보았다. 간단히 말하자면, 디드로 효과는 어떤 제품이나 물건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 그에 어울린다고 생각되거나 조금 아쉬운 점을 보완해 충족시켜 줄 만한 것들에 대한 욕망이 생겨나는 심리적 현상을 말한다.

디드로 효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사람의 심리가 미학적, 정서적으로 통일성과 조화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즉 심미적으로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감성의 본능이 욕망을 점화하는 것이다. 정말 마음에 들거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물건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 감각적, 정서적으로 그 것과 연결된 물건들이 조화를 이루기를 바라게 되고 그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굳이 바꾸지 않아도 될 것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중앙대학교 대학원의 전주언은 그의 논문 ‘심미적 브랜드의 종속제품 확장범위에 대한 연구’에서 브랜드의 관점에서 디드로 현상을 논했다. 어떤 제품이 출시되어 소비자에게 제안될 때 해당 제품이 특히 심미적 편익의 관여가 높은 경우 구매 고객의 디드로 효과를 목표로 하여 다양한 종속제품을 제공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또한 구매 고객의 감각 추구 성향 정도에 따라 디드로 효과도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심미적 욕구가 높은 사람일수록 디드로 효과가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은 디드로 효과를 제품 및 마케팅 전략에 이용하고 있다. 하나의 주 제품에 어울리는 다양한 종속 제품이나 연관 제품들을 함께 출시하기도 하고 아예 연관된 제품들을 함께 모아서 라인업을 구성하기도 한다. 고관여 제품에서부터 비교적 저관여인 제품들에 이르기까지 이런 경향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특히 심미적인 관여가 높은 패션이나 가구, 가전 품목에서 두드러진다. 한 예로, 가전제품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프리미엄이나 하이컬쳐 라인업은 하이엔드 감각에 통일성을 부여하려는 소비자의 욕구 자극을 목표로 한다.

디드로 효과는 소비자 개인적인 측면으로 볼 때 자칫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과소비 성향을 부추길 수 있는 부정적 요소도 내포하고 있다. 실제 미국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 줄리엣 쇼어(Juliet B. Schor)는 그의 베스트셀러 ‘과소비하는 미국인 : 왜 우리는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원하는가’에서 불만족에 의해 촉발되는 소비의 문제점과 역효과를 지적하기도 했다. 

사실 디드로 효과는 아주 사소한 곳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나는 우연히 갖게 된 이어폰이 새로 산 스마트폰과 잘 어울리지 않아 보여서 다른 것으로 구입하고 싶은 욕망을 무려 몇 주 동안이나 억눌러야 했다. 사실 누구도 그 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일이었고 그저 나 만의 욕구였지만 인내하기가 쉽지 않았다. 디드로 효과는 자칫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과소비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는 주의를 해야 하는 현상이다. 반면 기업 입장에서는 잠재 고객의 욕구를 확장시키고 만족시킴으로써 큰 마케팅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각자 적절한 선에서 절제하고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 참고 ]

전주언. (2013). 심미적 브랜드의 종속제품 확장범위에 대한 연구 : 주제품과 종속제품의 보완관계를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대학원 

Juliet Schor. (1992). The Overspent American: Why We Want What We Don't Need. Harper Perennial.

 

 

[ Featured Photo by Oliur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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