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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에 마케팅 컨설팅을 한 적이 있다. 사업 초기인데다 플랫폼 비즈니스라서 적극적인 영업과 함께 적절한 검색광고 구매를 통해 목표 고객 노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경영진은 아직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데 무슨 근거로 돈을 쓰겠냐며 극구 반대했다. 검색도 안 할 것이고 광고를 눈 여겨 보지도 않을 것이라면서.
풍족하지 못한 예산을 이해는 하지만 초기 광고비를 버리는 손실이라고 여기는 태도는 옳지 않다. 아직 모르는 서비스에 대해 목표 고객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노출시키는 것은 투자지 손실비용이 아니다. 주목하고 관심을 끄는 것만 목적이 아니다. 인지의 여부를 떠나서 단순히 그들의 시야에 자주 노출하는 것 만으로도 이름을 알리고 익숙하게 하는 데에는 효과가 있다. 이를 '단순노출효과'라고 한다.



 

 

'단순노출효과(mere exposure effect)'는 노출효과라고도 한다. 원래 미국 사회심리학자인 로버트 자이언스(Robert Zajonc)가 정립한 이론이다. 의미는 간단하다. 자주 접촉해서 익숙해지면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자꾸 보면 정 든다’는 속담과 맥락이 같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꼭 의도적으로 접하지 않아도 이런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자이언스는 한자를 거의 접해 본 적이 없는 미국 대학생들을 그룹으로 나누어 각각 다른 횟수로 한자를 보여 주었다. 그 결과 한자를 가장 많이 보여 준 그룹의 학생들이 가장 큰 호감을 나타냈다. 자이언스는 이러한 단순노출은 인지적 수준이 아니라 정서적 수준에 의해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효과가 보다 단순하고 빠르게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단순노출효과는 의식적인 인지적 정보 처리 작용 없이 일어날 수 있고, 이는 인식(생각)과 느낌(정서)은 서로 구별되며 서로 영향을 주는 관계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즉 단순노출효과는 정서 부분에서 빠르게 처리되고 부드럽게 축적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광고 영역에서도 단순노출효과에 관한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어 왔다. 2007년 미국 소비자 연구 저널에 기재된 논문에 따르면 단순노출효과가 배너광고 노출에도 적용된다. 연구진들은 피험자들에게 인터넷의 특정 기사를 읽게 하였고 그 동안 상단에 배너광고들을 노출시켰다. 배너광고들은 각각 다른 빈도로 노출되었다. 그 결과 피험자들은 높은 빈도로 접한 배너광고에 대해 높은 호감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노출효과는 일상 생활에서도 꽤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여기 저기서 들려 오고 주위 사람들이 자꾸 부르는 노래가 나 자신도 모르게 내 입에서 흥얼거리는 걸 발견하게 된다. 어떤 가수의 노래를 처음 들으면 그저 그랬는데 주위에서 자꾸 들리면 어느 샌가 익숙해지고 친숙해지게 된다. 기획사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자주 방송을 통해 노래를 내보내려고 기를 쓰는 이유다. 

익숙함은 정서적 습관, 정서의 축적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익숙함은 편안함을 낳는다. 그리고 편안함은 선호의 감정을 낳는다. 그 과정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루트에 의해서 조성될 수도 있지만 무의식적이고 감성적인 부분이 크게 관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노출효과는 우리의 의식적 인지 과정이 관여하지 않는 과정에서 익숙함과 좋아함이라는 정서가 발달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즉, 광고나 마케팅 측면에서 볼 때 목표 고객이 의식적으로 주목하지 않더라도 가급적 그 시야에 자주 노출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적극적으로 광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다시피, 이미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거나 과잉 노출되고 있는 제품이나 브랜드는 오히려 지속적인 단순노출이 역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위의 실험 결과에서 알 수 있다시피 단순노출효과는 대부분 피험자들이 모르고 있거나 익숙하지 않은 대상에 접촉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즉 신제품이나 신규 브랜드, 또는 스타트업이나 저관여 제품에서 단순노출효과는 의미 있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모르는 것을 익숙하게 만들어 전혀 없던 선호를 올리는 데 큰 효과가 기대된다.


아무도 모르는데 돈 들여 광고를 해봐야 뭐하겠는가라는 경영자들이 간혹 있다. 하지만 단순노출효과에 따르면 이는 틀린 말이다. 누구도 처음부터 익숙할 수는 없고 좋아하는 감정이 들 수는 없다. 결국, 의식적으로 살펴 보는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목표 고객이 있을 만한 곳에는 광고나 기타 홍보 수단을 통해 가급적 접촉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어느 정도 인지도가 확보되었거나 이미 인기를 어느 수준 이상 얻고 있는 상황에서는 지나치게 자주 노출될 경우 지루함이나 식상함, 올드함 등의 감정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소비자 조사를 통해서 노출 빈도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참조 ]

 

Zajonc, R.B. (December 2001). "Mere Exposure: A Gateway to the Subliminal". Current Directions in Psychological Science. 10 (6): 224–228. doi:10.1111/1467-8721.00154

Fang, X., Singh, S., & Ahluwalia, R. (2007). An Examination of Different Explanations for the Mere Exposure Effect. Journal of Consumer Research, 34(1), 97–103. doi:10.1086/513050

 

 

[ Photo by Peter Clarkson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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