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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파생상품은 특정한 기초자산을 기반으로 그 가치가 변동하는 데 따라서 이익을 보거나 손실을 입는 금융 상품이다. 본래 기초자산을 거래하는 당사자들의 위험을 헤지(대비 또는 회피)할 목적으로 탄생되었지만 머리가 똑똑하고 탐욕에 찬 금융 관계자들은 이를 잘 이용하면 꽤 큰 수익을 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결국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고수익 추구를 목적으로 한 금융파생상품들이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판매되어 오고 있는데 그 인기의 이유는 주로 고수익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건 아주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수익추구형 금융파생상품은 대부분 그에 상응하거나 때로는 오히려 더 높은 위험성이 확률적으로 늘 함께 한다. 비록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조건이 유지될 확률이 높게 설계되었다 하더라도 손실구간으로 진입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은 상존하며 만약 이것이 현실화되면 원금도 큰 손실을 보게 된다. 이러한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 가능성, 그리고 해당 원리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투자자에게 있어서는 더없이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판매자에 비해 구매자(투자자)는 각각의 금융파생상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나 기초자산의 성격, 위험의 내용이나 특성과 관련된 정보를 주의 깊게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만약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고 영업점에서 짧은 시간 내에 구두의 설명과 간단한 서류 등을 통해서 판매 행위가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더욱 불리하고 열세에 놓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판매자는 이런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구매자에게 손실의 위험성이 있음과 위험성에 관련된 정보를 뚜렷하고 명확하게 인식시켜 줄 책임과 의무를 갖고 있다. 이는 손실이 발생했을 때 그 손실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명분을 제공하기 때문에 판매자의 입장에서도 결국 긍정적인 장치를 마련해 두는 셈이 된다.

판매자는 단지 위험성과 관련된 내용을 설명 중 언급하거나 복잡한 서류들 속에 몇 줄의 설명과 함께 서명을 받았다는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설명이나 문서 속의 몇 줄은 구매자가 깊게 주의를 갖고 확인하거나 중요한 것으로 주목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소비자는 이른바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휴먼’일 뿐이기 때문이다. 즉, 짧은 시간에 주어진 많은 정보들을 완벽히 습득하거나 중요한 것을 간추려 핵심을 파악할 능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록 위험에 대해 한 두 번 강조를 하거나 한 페이지나 몇 줄 짜리 문구를 훑어 보도록 요구한다 해도 구매자는 이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상품 판매자는 위험의 존재와 가능성, 기초자산의 특성과 관련 현황 등과 관련된 핵심 내용을 보다 알기 쉽고 강하게 알려 줄 필요가 있다.

그러면 도대체 이런 상품들을 어떻게 판매하란 말이냐고 불평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그 상품들은 금융기관에도 꽤 짭잘한 수익을 안겨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럼 그 정도의 성의는 보여야 하는 것 아닐까? 더불어 은행 입장에서는 조건이 유지되었을 때 약간의 수익을 얻고 그렇지 않았을 때에도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반면, 구매자는 기껏해야 조금의 수익을 올릴 기회를 위해 큰 손실의 발생 확률을 감수하는 셈이다. 판매자 입장에서 이렇게 유리한 거래라면 적어도 구매자로 하여금 위험을 뚜렷하고 명확히 인지하게 할 수 있도록 진심을 담은 노력은 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도 판매자가 구매자에게 상품의 위험과 기초자산의 특성에 관한 기본적인 설명과 주지 행위는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행위의 내용과 정도가 충분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 듯하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행위의 목적을 보다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데 있어 넛지가 의외로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지 모른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장치들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고 본다.

첫째 위험과 관련된 정보를 맨 처음 제공한다. 초기에 제공하는 정보는 상대적으로 중요도를 강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으며 나중에 언급되는 내용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둘째 기초자산 정보 중 위험 구간 진입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명확하게 제공한다. 보통 자체적인 분석이나 시뮬레이션을 갖고 위험 가능성을 예측하는 모델 등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정보들은 그야말로 예측일 뿐이며 세상사는 예측을 벗어난 일들이 발생하는 걸 즐기는 편이다. 따라서 관련 정보들의 현실적 타당성을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관련 정보들 중 복잡한 부분과 숫자들을 단순화해서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숫자들은 천재를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다. 복잡한 숫자들과 정보들 중 위험과 관련된 사항은 일반 사람이라도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알기 쉽게 자료를 만들어 제시할 필요가 있다.

넷째 위험성에 대한 내용의 언어적 문자적 설명시 강조를 축소하거나 낙관적인 내용을 은근히 슬쩍 끼워넣지 않도록 한다. ‘지금으로서는 손실구간에 진입할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는 등의 언급은 구매자들에게 편향을 유도할 수 있다. 판매자는 대부분 전문가이고 기관이기 때문에 저런 말 한마디가 구매자의 심리에 큰 편향적 사고를 일으킬 위험을 가진다. 사실 위험이 없다는 건 사실이나 진실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저런 식의 언급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넛지 장치는 큰 비용이나 부담을 들이지 않고서도 구매자로 하여금 보다 효과적이고 강력하게 위험과 관련된 정보를 정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영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미 이러한 행위를 시행하고 있는 금융기관도 있겠지만 문제는 현장에서의 실천일 것이다. 

나도 과거에 금융파생상품의 권유를 받은 적이 몇 차례 있었다. 일반 예금을 하다가 담당자 분께서 추천을 하시는 걸 차마 말을 끊기 어려워서 설명을 모두 듣고 자료를 집에 가져 온 적도 있다. 개인적인 경험 상으로는 그 분들께서 설명도 상세하고 진정성 있게 잘 해주셨지만 내가 그 자리에서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손실 위험성에 대해서도 분명 정확하게 언급을 해주셨지만 강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었던 기억이다. 그런 기억을 바탕으로 생각해 볼 때 파생금융상품의 판매 현장에서는 위와 같은 넛지 장치들을 정책화시키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 본다.

판매 영역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진행해서 다소 편향된 점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분명한 점은 투자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의무와 책임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투자자는 자신의 큰 자산 손실이 걸린 문제이니만큼 스스로 관련 정보를 깊게 추구할 필요가 있다. 높은 위험을 감수하고 조금이라도 수익을 더 얻고자 위험을 감수한 결정을 최종적으로 내린 건 결국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투자는 정말 신중해야 한다. 위험 추구적인 성향이라면 손실이 나도 책임을 미룰 정당성은 별로 없다. 위험을 회피하고 손실을 혐오한다면 국가가 원금을 보장하는 상품을 선택하면 될 것이다. 스스로가 자신의 이익을 지킬 의지가 있고 최선의 노력을 다 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대신해 줄 사람은 없다.

 

 

[ Photo by Nik MacMillan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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