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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졌구만. 거봐 내 그럴 줄 알았어! 이기기 힘들 거라고 내가 그랬지?”

“그 사람, 크게 될 줄 내 이미 예전부터 알아 봤지.”

“제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저 선수가 해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고 보면 결국 이번 금융위기는 필연적으로 발생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대화나 방송에서 누군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어 보거나 자신이 직접 스스로 내뱉어 본 경험이 대부분 있을 것이다. 이 말들에 담긴 의미는, 내가 어떤 일이 일어날 줄 이미 잘 알고 있었으며 그러한 선견지명 능력 또한 스스로 확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예지력에 대해 자기 자신이나 타인으로부터 은근한 동조와 경외를 기대하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때로는 그저 결과에 대해 답답하거나 기뻐서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내뱉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실제보다 자신의 확신을 과신하는 심리적 경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렇듯 어떤 일이 일어난 후에 자신이 사전에 이미 그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다고 스스로가 더욱 확신하는 심리를 ‘사후확신편향(hindsight bias)’이라고 한다. (여기서 ‘사후’란 죽은 다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건이 일어난 이후’를 의미한다.) 위에서 예로 든 말들 속에는 모두 사후확신편향 심리가 담겨 있다.

사후확신편향은 다양한 연구 결과들로 확인된 심리 현상이다. 1975년에 피쇼프와 베이스는 실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미 대통령인 닉슨의 공산권 방문 결과에 대해 추정을 하도록 하였다. 방문이 완료된 후 실험 참가자들 각각에게 자신들이 했던 추정에 대해 회상을 해보도록 한 결과 대부분 원래의 추정 내용보다 실제 결과에 더욱 가까운 회상 평가를 내놓았다. 또한 피쇼프는 사건과 그 결과 가능성들을 몇 가지 제시하고 그 중 하나가 실제 결과임을 넌지시 알려준 다음 각각에 대해 발생 가능성을 추론해 보도록 했는데, 그 결과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실제 발생으로 이어진 결과들에 대해 가능성을 높게 추정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실험 결과들은 모두 사후확신편향이 실제로 발생되는 심리적 현상임을 말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사후확신편향은 왜 생길까? 심리학자들은 위의 실험을 비롯한 다양한 연구들을 바탕으로 사람의 인지적 한계에 따른 왜곡과 편향을 주된 원인으로 설명한다. 우리의 인지와 기억 용량과 효율은 무한하지 않다. 오히려 놀라울 정도로 한정적이다. 따라서 과거에 행했거나 접했던 사건 기억들은 동일한 사건에 대한 새로운 정보들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고 변형된다. 결국 새로운 기억들에 의해 기존 기억들이 왜곡되며, 이는 편향을 일으킬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정보, 즉 사후 정보가 본인의 기존 정보라는 착각 내지는 확신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여러 가설들이 있는데 그것들 역시 기본적으로는 인지적 한계와 왜곡에 근거를 두고 있다.


사후확신편향은 개인적인 측면에서 몇 가지 위험성이 있다. 첫째, 자기 자신의 예지나 예감 능력에 대해 비현실적이고 비상식적인 과신을 갖게 만들 수 있다. 이는 사건의 결과에 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원인과 과정을 탐구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둘째,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결과에 편향된 사고를 반복함으로써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인 가치관을 체화하고 매사에 냉소적이며 피동적인 태도에 익숙해질 위험이 있다. 

사회적인 측면으로도 사후확신편향은 문제를 유발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사건에 대해 결과 중심적이고 성과 비판적인 평가만을 강조하는 풍토를 조성함으로써 정책 결정자들과 행위자들을 위축되게 만들 수 있다. 결국 그러한 환경은 결정자들과 행위자들로 하여금 과정의 합리성과 건전성보다는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는 결과를 낼 수 있는 선택만 추구하게 만들 위험성이 있다. 둘째, 사회적 사건들에 대해 예측 가능성을 과대평가하도록 만들어 편견이나 선입관이 게재되지 않은 과학적, 이성적 원인 파악 과정에 방해를 줄 수 있다.

만약 어떤 결과가 실제로 개인 또는 집단적 예상에 부합되게 나온다 하더라도 ‘거 봐, 내 말이 맞잖아’라는 식 보다는 ‘예상했던 결과들 중 하나가 발생했군, 아쉽지만(또는 기대했던 대로라서 다행이지만)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다시 점검해 보도록 하자’는 식의 태도가 합리적일 것이다. 더불어 다른 결과의 가능성에 대한 검토도 중요하다. 이러한 태도는 편향된 감정적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을 막아 줌과 동시에 같거나 비슷한 차후 사건에 대해 보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예상과 대처를 가능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참고문헌]

Fischhoff, B., and Beyth, R. (1975). "'I knew it would happen': Remembered probabilities of once-future things.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Performance, 13, 1–16.

Association for Psychological Science. (2012, September 6). 'I knew it all along ... didn't I?' - Understanding hindsight bias. ScienceDaily. Retrieved August 25, 2019 from www.sciencedaily.com/releases/2012/09/120906123324.htm

 

 

 

[ Featured Photo by Егор Камелев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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