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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심리학 & 뇌과학

감각과 지각

주형진 2019. 9. 11. 22:39

 

우리는 대부분 ‘감각’과 ‘지각’이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둘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논리적으로 구분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감각과 지각은 각각 무엇이며 어떤 점이 다를까?

 

우리 몸에는 수많은 감각기관과 감각세포들이 있다. 촉각, 시각, 청각, 미각, 후각 등의 오감은 감각세포들로 이루어진 감각기관들에 의해 받아들여진다. 이것이 감각이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지만 여기에는 조금 복잡한 체계가 연관된다.

감각기관에 의해 수용된 감각 신호들은 온 몸에 수없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신경망을 통해서 뇌로 전달된다. 다양한 종류의 감각들은 저마다 뇌의 다른 곳에서 그 신호들을 받아 들인다. 그 곳들은 감각중추들로서 이 곳에서 비로소 우리는 감각을 온전히 수용하게 되고 느끼게 된다. 

만약 감각기관에서 감각신호가 발생되었지만 뇌까지 이어지는 신경망이나 뇌의 해당 감각중추에 무슨 일이 발생하면 우리는 그 감각이 존재하는 것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 예를 들어 발가락에 상처가 나더라도 어떤 이유로 다리의 신경이 차단되면 그 고통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경우 우리는 그 고통을 ‘지각’할 수 없게 된다.

 

자, 드디어 지각이 나왔다. 지각이란 감각기관에 의해 발생된 감각신호가 뇌의 감각중추로 전달되어 우리가 그 신호를 알게 되는, 즉 의식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는 흔히 감각을 느끼게 되면 그 현상을 곧 지각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모든 감각신호가 뇌의 인지체계에 온전히 수용된다는 잘못된 가정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이다. 위의 예에서와 같이 감각은 신경망 차단이나 장애에 의해 뇌에서 지각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신경계에 문제만 없으면 모든 감각은 지각되는 것인가? 아쉽지만 그렇지 않다. 감각은 신경계 전체가 온전히 작용할 때에도 상당히 무시당하는 편이다. 그것은 우리 뇌가 그렇게 생겨 먹었고 그렇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199년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와 일리노이 대학교의 다니엘 사이먼스는 간단하지만 많은 것을 의미하는 실험을 했다. 일단의 대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다른 색 운동복을 입힌 채 농구경기를 시킨 후 이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피험자들에게 이 영상을 보여 주면서 한 쪽 팀이 패스하는 횟수를 세도록 요청했다. 영상이 끝난 후 피험자들에게는 혹시 그 영상에서 다른 이상한 점을 발견했는지를 물었다. 사실 영상 중간에 선수가 아닌 학생 한 명이 고릴라 복장을 입고 가슴을 치며 지나갔는데, 이 모습을 보았는지 물어 본 것이다. 결과는 놀랍게도 피험자의 약 반 수가 이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들은 요청 받은 미션을 수행하느라 고릴라를 보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의 눈에는 고릴라가 지나가는 상이 감각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우리 눈이나 뇌가 편집 기능이 있어서 고릴라만 지우거나 모자이크 처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 고릴라의 시각 신호는 눈과 시각중추에 전달되었다. 다만 뇌는 다른 것에 주의를 쏟느라 그 신호를 온전히 수용해 지각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이다. 지각을 하지 못했으니 기억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운전 중에 블루투스를 이용해 핸즈프리 기기로 전화 통화를 하는 일이 있다. 적어도 몇 분 이상 통화를 하고 난 후 통화 도중 도로의 상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분명 통화 도중에도 시각과 시각중추, 그리고 운동신경 중추와 손, 발의 감각 세포들은 모든 감각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는 그 동안에 일어나는 많은 감각들의 지각에 실패한다. 당연히 기억도 나지 않게 된다. 그 이유는 통화 도중 뇌에서 지각에 필요한 많은 부분이 통화 내용에 할당되기 때문이다. 즉 주의가 분산되면 지각은 더 의식을 기울이는 쪽으로 쏠리게 된다.

이보다 더 간단하고 일상에서 많이 겪는 예가 있다. 운동을 하거나 몸을 쓰는 일을 하고 난 후 귀가해서 씻으려고 하는데 몸에 상처가 난 것을 알아차렸던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심지어 그 상처가 피가 날 정도로 다소 심한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모르고 있던 것이다. 이 역시 감각이 지각되지 못한 경우다.

 

이렇듯 뇌로 전달된 감각들 중 많은 부분이 지각의 범주에서 제외된다. 간단히 말하면 지각은 의식된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는 뇌의 한계라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뇌의 고효율성이라고 볼 수 있다. 수없이 밀려 들어 오는 감각신호들 중에는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도 많다. 또한 가장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그것과 관련이 있는 감각 정보들에만 선별적으로 주의를 집중해서 지각해야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이러한 선택적 지각은 생존 확률을 높이고 효율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즉, 모든 감각을 지각해야 할 절대적 필요성이나 당위성이 적을 뿐 아니라 지각이 가진 효율성은 진화적으로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 Featured Photo by bradley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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