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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8일 애플이 차세대 OS인 아이폰 OS 4를 발표하는 날, 어도비 및 일부 그래픽 디자이너는 다소 긴장된 마음으로 내용을 지켜 봤을 것입니다. 불과 4일 후면 어도비가 새로운 버전의 제품군 CS5를 발표할 예정에 있었으며 이 제품군에 야심차게 포함시키겠다고 공언했던 것이 바로 플래시를 사용하여 만든 프로그램을 아이폰 어플리케이션으로 변환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는 아이폰용 플래시 패키저 기능이였기 때문입니다. 즉 애플이 별도의 문제만 삼지 않는다면, 그리고 많은 유저들이 차세대 운영체제에 포함되기 원했던 플래시 지원의 소원을 들어 주겠다는 공언만 한다면, 어도비는 그래픽 디자이너층의 열광적인 지원과 거의 모든 개발 프레임워크에 대한 보다 강력한 지배력을 공고히 할 수 있는 탄탄대로를 확보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희망은 잡스의 단호한 한마디와 그에 덧붙여진 독설에 의해 무참히 산산조각이 나버렸습니다. 잡스는 플래시는 차세대 운영체제에서도 지원하지 않겠다고 못박았습니다. 뉘앙스는 단지 '이번에도 좀 불가능할 것 같다, 이유가 있다'라는 수준이 아니라 '어디서 웃기는 소리 하고 앉아 있어?, 꿈도 꾸지 마!'라는 정도의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더불어, 어도비는 게으르며 플래시는 지저분한 프로그램이라는 식의 독설까지 내뱉기에 주저 없었습니다. 어도비는 잡스에게 비즈니스적인 리젝트를 당했을 뿐 아니라 정체성에 대한 모독까지 느낄 정도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결국 어도비는 이번 발표를 통해서 아이폰과 아이패드등 아이어쩌구저쩌구로 이어질 애플 제품 내의 운영체제에서 자사가 가장 자랑하는 플래시가 발을 붙이지 못하게 퇴짜를 당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한 어플 개발 프로그램으로 기존의 탄탄하고 충성스러운 많은 고객들에게 새로운 영역을 구축해 주고 브랜드 로열티를 공고히 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날려 버리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잽이 아니라 훅과 어퍼컷트를 두 방 연달아 맞아 버린 셈입니다.

이러한 결정은 비즈니스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현재 운영중인 웹사이트 중 대부분이 플래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이를 이용하는 유저들의 불만을 불러 일으키고 상당부분 사용자층에 누수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애플은 이러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알려져 있는 애플의 정책 결정 시스템으로 추측해 보건데 이러한 결정이 내려지게 된 데에는 아마 잡스가 결정적인 영향력을 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왜 애플은 이러한 결정을 내리고 어도비와 단절(아마 거의 그런 상태가 아닐까 보는데요)을 택했을까요?

업계에서는 그 이유에 대해 다양한 추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여기서 '추측'이라고 하는 이유는 애플이 밝힌 이유들이 내심 상당부분 납득하기가 애매하기 때문이겠습니다. 명확히 납득된다면 추측도 안하고 그 이유에 대한 타당성을 따지고 있었겠죠.

일단 잡스와 애플측이 표면적으로 밝힌 이유는, 플래시가 효율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며 이 때문에 아이폰 OS의 효율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그러한 오류로 인하여 실행 도중 기기에 리소스를 엄청 잡아 먹어 과부하를 일으키고 타 프로그램의 실행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차세대 OS에서는 멀티태스킹을 지원해야 하는데 이러한 문제점은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고 그 당위성을 확대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문제 있는 프로그램 코드를 통해 만들어져 컴파일된 어플리케이션은 애플이 원하는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제품과는 거리가 먼 '불량'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절대 플래시로 제작되어 컴파일된 어플들은 발을 붙일 수 없다면서 애플의 개발자 라이센스 규약 3.3.1 조항을 강력하게 수정해 버렸습니다. (이 바람에 Phonegap 등 기존의 크로스 플랫폼 컴파일러 등이 불똥이 자신에게 떨어지지 않을까 숨을 죽였더랬습니다, 하지만 결국 애플은 이들에게는 칼을 거두어 들였죠)

사실 자기들의 제품에 대해 애착이 강하고 정체성에 확고한 영역의 선을 칼같이 긋는 애플로 볼 때 이러한 이유는 어쩌면 내부적으로 충분한 당위성의 힘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디자인 때문에 일부 기능을 기꺼이 포기해 버리는 것처럼 비록 이러한 결정으로 적지 않은 비즈니스적 손실과 수많은 추측 및 비판에 맞서야 할지도 모르지만 결국 장기적으로 볼 때 추구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댓가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애플이 어쩌면 회사 탄생 이후로 가장 번성하고 강력한 힘을 갖기 시작한 때이므로 힘으로서 모든 것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내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이러한 방향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즉, 만약 이러한 결정이 순수하게 치밀한 분석과 전략적 고심 끝에 내려진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에 근거를 했다면 향후 결과에 관계 없이 누구도 뭐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반면 많은 전문가와 분석가들은 애플이 내세우고 있는 이러한 이유에 앞서 플랫폼 지배 구조에 대한 전략적 차원의 포석이라는 데 보다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즉, 플래시가 윈도우나 안드로이드는 물론 자사의 아이폰 OS에까지 모든 경계를 넘어 설치면서 지배력을 강화하면 나중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도 있을 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플랫폼은 좋은 프로그램이 존재해야 가치를 인정받고 유저들을 확대시킬 수 있는데 특정 라인의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영향력이 확대될 경우 오히려 그 프로그램 라인들에 의해 플랫폼 자체가 종속되어 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플래시 기반으로 제작된 프로그램이 크로스 플랫폼 컴파일링 되어 아이폰 어플리케이션으로 등록되기 시작한다면 나중에는 애플 측에서 지원하는 순수 프로그래밍 언어 기반으로 제작된 어플이 크게 잠식당함으로써 주도권이 역전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외에 또 다른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즈니스적 결정 이외에 순수하게 잡스의 감정적인 결정에 따른 것이라는 시각입니다. 잡스는 어도비에 앙심을 품고 있으며 이번 기회에 통렬하게 복수를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애플과 어도비의 관계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어느 정도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의견에 상당한 공감을 표합니다. 그 옛날 애플이 MS와의 경쟁에 지쳐 가면서 경영상의 어려움에 처해 있던 와중에 야심차게 새로 내놓은 OS에 대해 어도비가 일종의 배반을 했더랬습니다. 즉, 어도비가 새로운 맥 운영체제에 호응하는 신제품을 내놓는 대신 당시 세를 무섭게 넓혀 가고 있던(아니 이미 대세를 잡고 있었던) MS 용의 어도비 제품 패키지를 출시해 버린 것입니다. 잡스 입장에서는 자신의 플랫폼에 가장 강력한 기반이 되어 주고 있었던 독점 프로그램이 자기를 짓밟기 시작한 경쟁사의 플랫폼의 품에 와락 안겨버린 꼴이 된 겁니다. 물론 그러한 느낌은 잡스나 애플 측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런 것입니다. 어쩌면 다 비즈니스 생리 상 어쩔 수 없는 전략적 선택이라고 봤을 때는 어도비의 처사가 문제가 있었다고만은 생각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잡스는 이 때부터 어도비에 악감정을 갖기 시작했고 칼을 갈아 왔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어쩌면 향후 파급 효과가 어마어마할 수도 있는 결정에 이렇게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어 있다면 상당히 실망스러운 부분이겠습니다. 사실 제 개인적으로는 위에서 말씀드린 세가지 이유가 모두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됩니다. 논리적으로 보았을 때 애플이 내세운 이유나 분석가들이 제시한 전략적 선택이나 모두 이번 결정에서의 타당하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더불어 비록 다소 어이없고 실망스러운 일일 수는 있겠지만 잡스의 개인적인(어쩌면 애플의 자존심상의 문제일 수도 있는) 감정도 개입이 되어 있을 거라 추측합니다. 비즈니스 자체가 사람의 일이며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는 감정의 지배를 받는 동물일 뿐이니까요.

이렇게 놓고 볼 때 이번 결정에의 이유와 그 근거는 그 윤곽이나마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해 졌습니다. 결국 애플과 어도비는 상당 기간 불편한 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게 되었고 어쩌면 영원히 회복되지 않아 서로간의 영역에서 영원히 배타적인 관계를 지속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도비는 모바일 플랫폼으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IT 비즈니스 시장에서 입지를 확보하려고 했던 시도가 물거품이 되었고 새로 출시한 제품군이 절름발이가 되어 버린 꼴을 보고 있어야만 하는 아픔을 겪게 되었습니다. 정확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관련 미국 블로그에서는 어도비가 이미 애플을 상대로 법적 고소를 준비중에 있다고 합니다.

결국, 이 두 업체의 싸움으로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 플래시를 즐기려 했던 유저들의 꿈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고, 그래픽 디자인력과 어도비의 든든한 지원 툴로 아이폰 어플 시장에 도전의 꿈을 키워 가던 이들 및 어플 진입장벽 하향 조정으로 모바일 비즈니스의 꿈을 실현시켜 보려던 이들에게는 실망과 짜증의 쓰나미가 덥쳐 들었습니다. 개발자가 아닌 저로서도 상당부분 아쉬운 점이 많고 내심 실망스러운 점이 적지 않습니다. 이번 결정의 이유에 대해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소비자이자 참여자이고 싶은 사람으로서 그렇습니다. 전략적인 선택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유저이자 소비자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보다 개방적이어야 하고 열려가야 하는 부분이 왠지 좁혀지고 닫혀지는 느낌이 들고 자꾸 답답한 느낌이 드는 건 괜한 저만의 생각일까요. 제가 무식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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