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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인에게 빌려 주고 받기를 포기하고 몇 년 간이나 잊고 있었던 돈을 어제 갑자기 받았다. 꿈을 잘 꿨나 보다. 공돈이 생긴 기분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가족들과 외식을 해야겠다.

- 마트에서 참치를 사려고 보니 마침 특가 할인이다. 다만 8개 묶음으로만 살 수 있다. 원래 2개만 사려고 했는데, 어차피 싸게 살 수 있고 내일이면 세일도 끝난다고 해서 바로 장바구니에 담았다. 계획보다는 좀 많이 산 셈이지만 어차피 사야 할 것들이고 싸게 샀으니 이득을 본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 날도 덥고 땀을 많이 흘려서 지친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피곤하다. 택시를 탈까? 비싼 택시비를 생각하니 망설여진다. 아 참, 오늘 점심도 못 먹었지. 어차피 점심 값도 아낀 셈이니까 그 보상으로 택시를 타도 마음이 덜 쓰릴 것 같다. 택시 !!

- 너무 갖고 싶었던 상품이 눈에 보인다. 가격은 좀 센 편이지만 꼭 사고 싶었던 거다. 차를 사려고 매달 모으는 돈이 있는데 이번 달은 그 돈으로 이걸 살까? 아니다. 그러기에는 찝찝하다. 그건 건드리면 안 될 것 같다. 일단 연기!

- 오늘도 스타벅스에서 6천 원이 넘는 카라멜 마끼아또를 사서 마시다가 갑자기 어제 생각이 났다. 현금만 받는 집 근처 채소 가게에서 오이 가격이 1천 원에 네 개에서 세 개로 올랐다고 비싸서 못 사먹겠다고 마누라와 이야기하던 나의 모습이... 가끔 사는 오이 서너 개의 가격이 카라멜 마끼아또보다 크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내 위선적이고 불합리해 보이는 마음이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옛 말에 쉽게 번 돈은 쉽게 쓴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대부분의 경우 맞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 그건 우리의 심리가 그렇게 생겨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생겨 먹은 그 심리 구조가 작용하는 기제를 설명하는 것이 바로 ‘심적 회계(Mental Accounting)’이다. 
(아직 우리말로 완전히 통일이 안 돼 있다. 심리적 회계, 심리적 회계장부, 마음 속 회계, 마음 속 회계장부 등 다양한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 글 맨 위에 든 예들은 모두 심적 회계가 관여된 사례들이다. 이준구 교수의 정의에 따르면 심적 회계는 사람들이 마음 속에 갖고 있는 일종의 회계 장부로서, 어떻게 생긴 돈이고 어디에 쓸 돈인지에 따라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기록한다고 보는 개념이다. 기업들이 회계장부에 사업상 발생하는 모든 금전적 행위들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항목별로 분류해서 기록하는 것과 유사하게 개인들도 수입, 지출, 투자, 예산책정 등 다양한 활동들을 마음 속에서 계정들로 분류해 관리한다는 것이다. 다만 개인은 기업의 회계처럼 복잡하고 정교하며 체계적인 작업은 아니며 스스로도 자신이 그런 작업을 무의식 중에 한다는 것을 거의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 다르다.



심적 회계란
사람들이 마음 속에 갖고 있는 일종의 회계 장부로서, 

어떻게 생긴 돈이고 어디에 쓸 돈인지에 따라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기록한다고 보는 개념이다.
- 이준구 교수



사실 심적 회계는 전통 경제학의 관점에서는 조금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개념이다. 인간은 누구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객관적이기에 동일한 금액의 돈은 같은 크기의 효용으로 인식한다는 것이 기존 경제학의 기본 전제다. 이 전제에 따르면 돈이 생긴 원인이나 맥락에 관계 없이 10만 원이라는 돈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가치로 느껴져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 대부분은 길을 가다가 우연히 주운 돈 10만 원과 하루 종일 땀 흘려 번 10만 원의 가치를 동일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수학적으로는 분명 같은 액수이지만 두 경우에는 각각 돈이 생긴 원인이 다르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는 같은 가치로 느껴지지가 않는 것이다. 

 

이런 심리적 기제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두 경우의 돈을 같은 계정에 할당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공짜로 생긴 돈은 임시 계정에 담아 놓는 반면 열심히 일해 번 돈은 저축 계정에 소중한 마음으로 보관해 두는 것이다. 각각 다른 가치를 부여해서 따로 구분해 놓은 돈은 사용할 때에도 다른 태도로 대할 수밖에 없게 된다.

 

심적 회계는 프레이밍과 관련이 깊다. 프레임이란 사건이나 대상을 대하는 데 적용하는 관점이나 태도, 방법의 틀을 말한다. 동일한 행위나 사건이라 하더라도 어떤 프레임을 덧씌우느냐에 따라 아주 다른 인식이나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심적 회계의 경우 최종 산출된 금액이 같다 하더라도 각각의 경우에 다른 프레임을 갖고 바라보게 되면 마음 속으로 받아들이는 가치는 달라지며 서로 다른 종류의 계정으로 이름 붙여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회계라는 프레이밍 방식을 적용해서 각 계정이라는 프레임에 돈을 넣어 두게 되는 셈이다.

 

심적 회계 (Mental Accounting) (2) 에서 계속 >>

 


[ 참고문헌 ]

Thaler, R. H. (1999). Mental accounting matters. Journal of Behavioral Decision Making, 12(3), 183–206.

이준구. (2017). 이준구 교수의 인간의 경제학. 알에이치코리아.

리처드 세일러, 캐스 선스타인. (2008).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 Nudge. 리더스북.

 

 

[Featured Photo by Clay Banks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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