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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적 회계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설명한 이는 노벨상 수상자이며 ‘넛지’의 저자이기도 한 리처드 세일러 교수다. 세일러는 심적 회계를 개인이나 가정이 재무 행위를 조직하고 평가하며 추적하는 데 사용하는 인지적 활동의 집합체라고 말했다. 세일러는 심적 회계가 고전 경제학에서 돈의 기본 성질로 드는 ‘돈의 대체 가능성’이라는 개념을 깨뜨린다고 강조한다. 돈의 대체 가능성이란 돈 자체에는 어떤 라벨도 붙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 어느 용도로도 전용해 사용이 가능하다는 성질을 말한다. 즉 여행 경비로 모아 두었던 돈을 가전 제품 구매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언뜻 보면 당연한 것 같다. 하지만 심적 회계에 의하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일단 집을 사려고 모으는 심적 계정과 여행 목적의 계정은 서로 마음 속에서 구분이 되어 있어서 쉽게 다른 계정으로 돈을 이동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 특성에 의한다면 돈의 대체 가능성은 더 이상 일반적인 전제일 수가 없게 된다.

 

 

세일러는 심적 회계에서 중요한 요소로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거래나 사건의 결과를 인식하거나 경험하는 방법과 결정을 하고 평가하는 방법이다. 심적 회계는 거래 효용성을 기준으로 거래나 사건 전과 후에 비용과 이익을 분석한다. 이 때 효용의 절대적 크기보다 준거가 되는 기준점으로부터의 변화 정도가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중요하다

 

둘째, 특정 돈의 출처나 사용을 특정 계정에 할당하는 행위다. 기업의 회계와 마찬가지로 심적 회계에서도 거래 행위와 돈에 라벨이 부착된다. 비용은 목록으로 묶여지고 지출은 때때로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으로 정해 놓은 예산 범위에 의해 제한을 받기도 한다.

 

셋째, 계정 정산 빈도와 ‘선택의 규격화(choice bracketing)’에 관한 것이다. 심적 회계의 계정들은 일 단위나 주 단위, 또는 년 단위나 기타 다른 기간 단위로 정산될 수 있다. 또한 정산 범위의 단위는 매우 넓게 잡을 수도 있고 반대로 좁혀질 수도 있다.

 

홍길동이라는 사람이 돈의 지출이나 수입이 수반되는 어떤 사건을 경험했다고 가정해 보자. 금전적으로 동일한 내용이라 하더라도 그 사건이 일어난 배경이나 맥락에 따라 심리적으로 느끼는 효용 가치는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일종의 프레이밍 효과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위에서 말하는 심적 회계의 첫째 요소다. 홍길동은 그 사건을 통해 획득하거나 사용한 돈을 마음 속 특정 계정에 각각 다르게 할당한다. 예를 들면 막 써도 되는 계정과 절대 쓰지 말아야 할 계정 등으로 구분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심적 회계의 둘째 요소다. 홍길동은 하나의 사건을 그대로 정산할 수도 있고 반복되는 여러 사건을 묶어서 일정 기간 단위로 정산할 수도 있다. 쉽게 말해서, 주식을 할 때 데이트레이딩을 할 수도 있고 일정 기간을 염두에 두고 가치 투자를 할 수도 있는 것과 비슷하다. 정산 단위나 기간에 따라 느끼는 만족도나 가치가 틀려질 수 있다. 비록 오늘 하루를 생각하면 손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 달을 묶어 따지면 충분히 이익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것이 바로 셋째 요소인 선택의 규격화와 관련된 것이다. 세일러가 말하는 심적 회계의 세 가지 요소는 이렇듯 누군가 경험하는 경제적 사건에 의한 심적 회계 현상에 관여하는 요소들을 잘 설명해 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늘 경제적 사건을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 속에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늘 심적 회계가 작동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일한 금액을 현금으로 지불하는 것에 비해 신용카드 결제는 심리적으로 부담을 덜 갖는다. 이는 fMRI를 이용한 신경과학 연구에서도 밝혀진 바인데, 심리적으로 보면 실제 물성을 지닌 지폐나 주화가 내 손에서 다른 이에게 넘어가는 것의 현실적 고통이 신용카드를 통해 거래되는 보이지 않는 비현실적 고통보다 아무래도 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우리의 심적 계정에서 지출을 위해 구획해 놓은 방이 현금 따로 신용카드 따로인 것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심적 회계를 연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선택이 관여되는 인식과 행동의 심리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건의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너무 많다. 우리 스스로의 행동에서도 때로는 그런 면을 발견해 당황하기도 한다. 심적 회계의 요소와 작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그런 비상식적 행동들이 상식적일 수도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심적 회계는 수학과 같이 절대적이고 범용적인 법칙은 아니다. 심적 회계는 우리 자신의 마음 속에서 늘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 글 맨 처음에 들었던 몇 가지 사례 중 비슷한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다면 그 사실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잘 관찰해 보고 다른 이들의 행동을 또한 눈 여겨 보면서 심적 회계가 관여하는 재미있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우리 스스로 심적 회계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행동하는 비합리적인 낭비나 잘못된 선택 행위를 새롭게 알아 차려 절제할 수 있는 지혜를 갖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심적회계 (Mental Accounting) (1) 보기 >>

 

 

 

[ 참고문헌 ]

Thaler, R. H. (1999). Mental accounting matters. Journal of Behavioral Decision Making, 12(3), 183–206.

이준구. (2017). 이준구 교수의 인간의 경제학. 알에이치코리아.

리처드 세일러, 캐스 선스타인. (2008).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 Nudge. 리더스북.

 

 

[ Photo by Beatriz Pérez Moya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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