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 최근 일어났던 흉악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와 한참 나누고 난 뒤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보는데 ‘범주’라는 단어가 순간적으로 ‘범죄’로 보였다. - 옆에 앉아 있는 꼬마 아이의 미소를 보고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며 잊고 있었던 어릴 적 친구가 갑자기 떠올랐다. 놀랍게도 그 아이의 이름도 생각이 났다.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피자, 쫄면, 햄버거, 라자냐 등의 사진을 보여준 후 약 1분 뒤에 ‘스파’로 시작하는 네 음절의 단어의 뒷부분 두 글자를 채워 넣어 보라고 했다. 요청 받은 세 명 모두 ‘스파게티’라고 대답했다. 다른 세 명에게는 그리스, 로마, 힘 세 보이는 장수, 중세군인 사진을 보여준 후 역시 동일한 요청을 했다. 그랬더니 세 명 중 ..
늦더위가 꼬리를 내리고 나니 가을 장마라는 손님이 찾아 왔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출근 길 도로 위에 움직임이 굼뜬 차량들이 줄을 이어 가다 서다 하고 있다. 정체를 예감하고 일찍 서둘러서 그런지 바쁘게 내리는 빗줄기와 달리 유진의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수색을 지나 연세대 정문 앞에 다다르면서 정체가 조금 심해지는 듯하다. 몇 달에 한 번 광화문 본사에 회의를 들어갈 때면 여지 없이 지나게 되는 연세대는 유진의 모교다. 늘 바쁜 직장 생활 탓에 모교 앞을 지난다고 해서 특별한 느낌을 가진 적은 딱히 없었던 듯하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그런 것 같지가 않다. 물방울이 쓸리는 차창 너머로 비치는 정문의 풍경이 오늘따라 눈에 띈다. 그 때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낯 익은 음악이 들려 온다. 임현정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