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더위가 꼬리를 내리고 나니 가을 장마라는 손님이 찾아 왔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출근 길 도로 위에 움직임이 굼뜬 차량들이 줄을 이어 가다 서다 하고 있다. 정체를 예감하고 일찍 서둘러서 그런지 바쁘게 내리는 빗줄기와 달리 유진의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수색을 지나 연세대 정문 앞에 다다르면서 정체가 조금 심해지는 듯하다. 몇 달에 한 번 광화문 본사에 회의를 들어갈 때면 여지 없이 지나게 되는 연세대는 유진의 모교다. 늘 바쁜 직장 생활 탓에 모교 앞을 지난다고 해서 특별한 느낌을 가진 적은 딱히 없었던 듯하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그런 것 같지가 않다. 물방울이 쓸리는 차창 너머로 비치는 정문의 풍경이 오늘따라 눈에 띈다. 그 때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낯 익은 음악이 들려 온다. 임현정의 ..

유난히 생각이 많은 사람이 있다. 나도 그런 편인 듯하다. 기분이 좋지 않거나 찝찝한 일이 있으면 쉽게 떨쳐 내지 못한다. 그 일은 이미 실체 없이 과거 속으로 흘러 내려간 허상에 불과한데도 내 머리가 끄집어 내는 것이다. 인간에게 전두엽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감정과 기억의 생성은 변연계에서 출발하지만 생각의 되새김은 전두엽이 없다면 아마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집착은 그 대상이 기억이든, 생각이든, 탐욕이든, 아니면 심지어는 사람이든 근본적으로 ‘놓지 못함’에서 오는 것이다. 집착은 재빨리 추스르지 못하면 가속하는 특성을 갖고 있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속도가 빨라진다. 운전을 하는 사람이라면 속도를 올릴수록 시야가 좁아지고 위기 대처 능력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점을 잘 안다. 시속..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늘 비슷한 풍경을 경험합니다. 모든 분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죠. 바로 스마트폰입니다.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거의 비슷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과거 한 때의 저도 똑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을 잘 보지 않습니다. 통화를 하거나 업무상 필요할 때에만 사용합니다. 제가 스마트폰을 잘 보지 않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일단 제 스마트폰의 속도가 느리고 성능이 좋지 않아서입니다. 5년이 넘은 기종이다보니 서서히 생명을 다해가는 느낌입니다. 사용하는 게 더 스트레스일 때가 많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눈이 피곤해서입니다. 별로 좋지 않은 광원에 조그마한 화면을 뚫어지게 들여다 보면 조금 지나서 눈이 침침해지고 건조해지는 걸 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