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트레프레너는 단순히 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앙트레프레너십을 바탕으로 혁신을 추구하고 고객을 위한 가치를 발굴해서 자신과 고객, 나아가서는 사회를 변화시키고 모두에게 경제적, 심리적, 사회적 이익을 누리게 하는 창업가, 기업가이다. 앙트레프레너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키우기 위해 진지하고 성실하게 노력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 사업의 크기따위는 상관없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아니면 골목에 조그마한 가게이든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고 싶고 삶의 보람을 느끼기를 원하는 창의적이고 남다른 창업가라면 앙트레프레너로서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자신의 영역에서 성공적인 앙트레프레너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지속해 나..
혁신은 그 자체로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보통 실패한 혁신이라 불리우는 것들은 그 혁신의 산물이 사회적, 문화적 또는 경제적으로 유익하거나 의미있는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 것들이다. 가치를 창출해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것이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데 실패할 수 있다. 이는, 그 혁신이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 갔거나 혁신의 주체 세력이 지속적인 추진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혁신이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변화의 흐름, 즉 소위 말하는 트렌드라는 요소와 적절하게 융합이 되어야 한다. 변화의 흐름과 혁신은 서로 매우 밀접하게 얽혀 있다. 변화의 흐름을 통해서 혁신이 탄생되고 혁신에 의해 변화의 흐름이 가속화하거나 새로 탄생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지만, 혁신은 그로 인한 가치가 사회, 문화, 경제,..
날이 갈수록 평균수명이 높아지고 있다. 반면 실질 퇴직 연령은 정체하거나 낮아지는 중이다. 이는 곧, 은퇴하고 상당히 오랜 세월을 직장 없이 보내야 하는 사람들이 점점 빠르게 늘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첫 직장을 잡기 어려운 청년 실업률만큼이나 직장에서 쉽게 잘리고 일찍 퇴직을 강요당하는 비자발적 조기은퇴율의 증가는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생계형 자영업자들의 암울한 현실도 이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독립적인 경쟁력과 생존 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떠밀리듯 직장 생태계 밖으로 밀려 나온 40대에서 60대 초반 직장인들은 생계 문제의 짐과 더불어 만만치 않게 남은 수십년의 여생을 보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이런 상황은 이들로 하여금 진지하게 제2..
앙트레프레너와 사업가, 경영자 등은 서로 배치되는 개념이 아니다. 앙트레프레너십을 갖고 행동하는 사업가면 앙트레프레너요, 그런 경영자도 앙트레프레너다. 심지어는 골목 안에 있는 작은 식당 주인도 앙트레프레너가 될 수 있다. 앙트레프레너는 늘 혁신을 꿈꾼다. 혁신이라는 것이 무척 거창한 것처럼 들리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 주변에는 ‘원래 그런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사회적 규범과 같이 큰 규모의 것들도 있지만 시장 상거래의 관습 같은 작은 규모의 것들도 얼마든지 많다. 심지어는 개인적인 습관들도 그 ‘원래 그런 것’에 포함된다.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혁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혁신을 거창한 것으로 생각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절대 그렇..
앙트레프레너(entrepreneur)는 13세기 불어에서 기원되어 서구사회 전반에 걸쳐 사용되고 있는 단어이다. 당시 프랑스의 ‘entreprendre’는 ‘착수하다’, ‘시작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18세기 초 프랑스에 거주하는 아일랜드인 ‘리차드 캔틸런(Richard Cantillon)’이 1755년 발간된 그의 책 ‘상업의 본질에 관한 에세이’에서 이 단어를 사용했다. 캔틸런은 앙트레프레너를 확정된 비용을 들여 불확정된 가격에 판매하기 위해 제품을 중개하거나 판매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캔틸턴은 앙트레프레너에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risk-taker)’의 의미를 강하게 색칠했다. 이후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경제학자 ‘장 바티스트 세이(Jean Baptiste Say)’는 ..